적명 스님 사십구재에 다녀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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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 스님 사십구재에 다녀오며
  • 김재호
  • 승인 2020.02.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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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지난해 12월 동안거 수행 중 원적에 드신 적명 스님의 사십구재가 있던 날이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문경 희양산 자락의 봉암사에 도착한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천여 명의 스님과 신도들로 인산인해인 사찰 풍경에서부터 적명 스님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태고선원 봉암사는 일 년에 단 한 번만 대중 출입이 가능한 특별선원이다. 더욱이 깊은 산중에 자리한 수행 도량이어서 접근조차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스님의 막재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도착해 사찰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낸 이들도 있었다.
봉암사를 찾은 대중들은 가장 먼저 스님이 기거하셨던 요사채를 찾았다. 방 한 켠에 자리한 스님의 영정과 유골을 향해 절을 올리던 대중들. 저마다의 가슴속엔 스님을 향한 ‘그리움’과 극락왕생의 ‘염원’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유동영
ⓒ유동영

 

“적명 스님은 스님의 함자처럼 대중 속에 있으면서 늘 고요히 지내셨고, 혼자 토굴에 살면서도 늘 밝고 투명하게 대중처소에 살 듯 사셨던 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변을 당하시니…, 수좌들의 정신적인 기둥이나 다름없는 분이셨는데 상당히 혼란스러운 겨울 반 철이었다.” -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 인터뷰 중

출가 이후 오로지 수행자로서의 본분에 매진해 온 적명 스님. 대중이 기억하는 스님은 불법을 향한 길 위에서 깨달음을 구하고자 꿋꿋이 전진한, 엄격했던 수행자이고, 배움의 길 위에서는 아랫사람에게도 길을 얻음을 경계치 않던 어른이었으며, 천진하고 인자한 미소로 대중을 맞이하던 스승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스님의 사십구재는 두 시간여 진행되었다. 이날만큼은 넓게만 느껴졌던 봉암사 대웅보전이 비좁았다. 전각 주변에도 자리 잡지 못한 대중들은 절 마당에서 대웅보전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한 채 법당을 향했다.

ⓒ유동영
ⓒ유동영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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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왕생을 염원하는 염불 소리와 ‘석가모니불’ 정근 소리가 봉암사 도량은 물론 희양산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이런 대중들의 목소리를 스님께서 듣고 계신 걸까? 근래 어느 날보다 따뜻하고 화창한 오늘, 천진한 미소를 짓고 계시던 사진 속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재 중간, 스님의 생전 법문이 울려 퍼진다.

ⓒ유동영
ⓒ유동영

 

“간화선이라는 것은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법인데요, 이 화두는 보통 사람이 듣고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그냥 보통 말이 아닙니다. 해답을 얻기만 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깨달음의 관문과도 같은 말입니다.”
엄숙했던 자리에 작은 탄식이 들려온다. 이제 법석에 오른 스님을 더 이상 뵐 수 없는 탓에 일부 신도들은 합장한 손을 가져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어진 봉암사 주지 원광 스님은 인사말에서 적명 스님이 평소 강조하셨던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는 봉암사가 구산선문 중에 명맥이 꿋꿋하게 이어가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성철 스님께서 결사하는 그 정신이 이어져 가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청빈한 봉암사가 이어져 가는 것, 이 세 가지 부분은 항상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유지를 항상 스님들과 함께 지켜나가길 원을 세우겠습니다.” - 봉암사 주지 원광 스님 인사말 중

‘영원한 수좌’ 적명 스님다운 말씀이다.
스님들과 신도들의 헌화로 마무리된 사십구재. 대웅보전은 스님의 수행 일평생을 대변하듯 고요했다. 그 고요는, 다만 어둡지 않다. 적명 스님의 바람처럼 이곳 봉암사에는 깨달음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뭇 수행자들의 치열한 구도 여정이 계속될 테니…. 더욱이 스님은 우리 마음과 기억 속에 여여히 살아 계시다.

“수좌의 마음속에 안이함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 수좌의 가슴은 천 개의 칼이요, 만 장의 얼음이어야 한다.” - 적명 스님의 유고집 『수좌 적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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