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붓다] 껍질의 경계에서 공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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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붓다] 껍질의 경계에서 공을 만나다
  • 마인드디자인(이현지)
  • 승인 2020.02.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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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갤러리 [peel-그 경계를 상상하다] 전
021갤러리 [peel-그 경계를 상상하다] 전

우리는 ‘밖으로 드러난 현상과 그 안에 존재하는 본질’에 의지해 세계를 인식한다. 눈에 보이는 단단한 껍데기인 현상이 있고, 그 속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인간은 ‘바깥의 것’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안의 것’으로 사물의 기능, 사람의 본성, 자연의 속성 등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체계는 세계가 고정된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을 만든다.

이 믿음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 짓게 한다.

“형태의 현상과 본질을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우리의 단단한 신념에 균열을 가하는 전시 <peel-그 경계를 상상하다> 전 (展) 에 다녀왔다.

글.

마인드디자인(이현지)

사진.

021갤러리 제공

 

껍질은 무엇인가, 무엇일 수 있는가

바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안으로 들어와 있는 ‘뫼비우스 띠’.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으니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없다. 전시는 껍질의 안과 겉이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현상과 본질이라는 인식 차원뿐 아니라, 참과 거짓, 흑과 백이라는 논리적 판단에 관해서도 안과 밖의 구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시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전시에 참여한 박동삼, 이병호, 이환희 작가는 형상의 속성을 지워 실루엣만 남기거나, 껍질 이면의 실체를 드러 내거나, 두텁게 마티에르를 올리는 작업을 선보이며 “껍질은 무엇인가, 무엇일 수 있는가, 무엇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한다.

디테일을 버린 실루엣이 말하는 것

성별도 생김새도 알 수 없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박동삼 작가의 작품에서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웅크려 누워 있는 어떤 이의 실루엣뿐이다. 그 어떤 이가 가슴이 아파 오열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마음 편안히 쉬고 있는 것인지 작품은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만이 안다. 작품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디테일을 버리고 속성을 잃은 껍질은 사물의 안과 밖을, 관객의 안과 밖을 이어준다.

박동삼 작가는 사물의 디테일과 속성을 벗어낸 조형 작품을 만든다. 모든 사물은 각자의 실루 엣, 즉 윤곽을 가지고 있다. 시각에 즉시 들어오는 윤곽은 인식의 결정적인 매개체다. 실루엣만을 살려내 껍질이 스스로 말하도록 한다. 시각적 디테일과 물질적 속성을 버리고 껍질을 드러내기 위해 한지와 투명 테이프를 활용한다. 그의 작품에서 ‘그 안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고유한 본질’ 은 설 자리를 잃고 작품의 안과 밖을 부유한다.

 

텅 비어 있음을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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