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도둑맞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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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도둑맞은 가난
  • 김택근
  • 승인 2020.01.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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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가난을 도둑맞았다.” 몇 해 전 저명한 목사가 새해 포부를 묻자 한국 교회 현실을 직시하자며 이렇게 탄식했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어서 천국이 그의 것이라 일렀다. 그런데 가난을 도둑맞았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민중의 고난 속으로 들어가 약자를 보듬었던 한국 교회가 살이 올라 뒤뚱거리고 있다. 찬양은 우렁차고 의식은 눈부시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편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헌금을 강요하고, 종말론으로 위협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 교회가 인맥을 찾고 가진 자의 복을 빌어주는 기득권층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대형 교회는 엎드려 간구하기에는 배가 너무 나왔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떠한가. 역시 가난을 잃어버렸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돌아보면 부처님이 보시기에 불편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회’를 ‘사찰’로 바꿔서 타락의 실상을 옮겨보자. ‘보시를 강요하고, 종말론으로 위협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 사찰이 인맥을 찾고 가진 자의 복을 빌어주는 기득권층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대형 사찰은 엎드려 간구하기에는 배가 너무 나왔다.’

출가수행자들은 부처가 계실 때부터 걸식하고, 남이 버린 베 조각으로 옷을 만들고, 지붕이 있는 곳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청빈이 수행의 생명이었다. 청허 스님은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처럼 하라”고 일렀다. 그래서 도를 이루려면 가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불교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탈종교화 시대라고 한다. 종교가 세속에 물들면 더 이상 ‘으뜸 가르침’이 아니다. 종교가 속인들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 신도들은 이 땅의 욕심을 그대로 지닌 채 복만을 받겠다고 덤빈다. 결국 믿음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한국 불교에 위기가 닥쳤다고 한다. 잇단 불미스런 사건에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처럼 신도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근원적인 실체는 무엇일까. 바로 가난을 잃어버림이다. 세속에 물들어 마음에 살이 올랐음이다. 지금 위례 신도시 귀퉁이에서는 ‘천막결사’라 이름 붙인 스님들의 동안거가 진행 중이다. 비닐하우스 상월(霜月)선원에서 ‘서리와 달을 벗 삼아 정진’하고 있다. 스님들은 “고작 한 그릇이면 족할 음식에 흔들리고, 고작 한 벌이면 족할 옷에서 감촉을 탐하고, 고작 한 평이면 족한 잠자리에서 편안함을 구한 탓에 초발심이 흐려졌다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불교계가 탐욕을 버리고 새로 깨어나기를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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