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하루 여행] 겨울,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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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 하루 여행] 겨울, 풍광
  • 양민호
  • 승인 2020.01.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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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 양평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겨울바람도 방랑벽을 막기엔 부족한가 보다. 겹겹이 옷을 여미고, 이른 새벽 길을 나섰다. 서울 근교, 풍광 좋기로 유명한 남양주로 가는 길. 날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설레기만 하다.

#운길산 ─ 수종사

종소리처럼 맑은 절, 수종사(水鍾寺).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로 지정될 만큼 풍광 좋은 곳이다.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한 이곳은 창건 이래 수많은 선비와 묵객들의 쉼터였다. 유년 시절부터 수종사에 오르길 즐겼다는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서거정, 이덕형, 김종직 등 학자와 정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조선 후기 초의선사가 이곳에 머물며 다산과 교류하며 차(茶)에 관한 여러 저술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연유로 한국 다도문화의 원류로도 꼽힌다.

동이 트기 전 어둠이 깔린 숲길을 올랐다. 불이문 지나 흙길을 따라 몇 걸음, 자애로운 미륵보살님(상)이 객을 반긴다. 그로부터 몇 걸음, 돌계단을 오르니 금세 절 입구 해탈문이다. 경내로 들어서자 흑구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짖어댄다. 반가움의 표시인지 경계의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정적을 깨는 소리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행여나 스님들 선정마저 흔들어 깨운건 아닐는지…. 몸과 마음을 소란하게 않게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삼정헌, 대웅보전, 부도, 법종각, 그리고 세조가 하사했다는 수령 500년 은행나무를 차례로 돌아본 다음 응진전을 거쳐 산령각에 올랐다. 수종사에서 경치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로는 대략 세 곳이 있는데, 삼정헌(차실) 옆 마당과 은행나무 앞, 그리고 절과 한강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산령각이다. 산령각 앞에 서서 멀찍이 펼쳐지는 세상 풍경을 감상한다. 탁 트인 시야에 마음도 덩달아 크고 넓어진다. 그에 비하면 저기 점점이 펼쳐진 바깥세상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가. 지금 손에 든 찻잔 없어도 느긋하게 풍광에 취해 다선(茶禪)의 경지를 가늠해본다.

INFORMATION

수종사의 국가문화재로는 대웅보전 옆 세 기의 탑이 있다.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옹주의 부도(보물 제2013호), 삼층석탑(비지정),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이다. 각기 다른 외형과 높낮이로 나란히 선 탑들이 이색적이다. 한편 수종사는 절을 찾는 방문객들을 위해 무료로 차를 제공하고 있다. 오전 10시 30분-11시 30분까지 삼정헌에서 따뜻한 차를 즐길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433번길 186 수종사

종무소 031-576-8411

#다산 정약용 유적지

남양주와 수종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 다산 정약용.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긴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말년에 후학을 양성하며 저술에 매진했던 곳에 지금은 유적지가 세워져 있다. 개혁가이자 근대적 사상가였던 다산이 남긴 꿈의 흔적을 좇아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유적지는 생각 외로 넓었다. 중앙에 있는 상

(像)을 중심으로 생가, 묘, 사당, 문학관, 전시관이 사방으로 자리해 있었다. 먼저 다산의 생가터에 복원된 ‘여유당(與猶堂)’을 둘러보고, 집 뒷동산에 자리한 묘지에 올랐다. 생전 수종사에 오르길 좋아했다는 그의 묫자리가 묘하게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던 풍광과 닮아 있었다. 그의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 마음을 안 누군가의 배려였을까. 어느쪽이든 썩 다산의 마음에 들었을 듯싶다. 묘를 내려와 사당을 참배하고, 이어 전시관과 문학관을 관람했다. 두 곳에는 다산의 생애와 활동 기록,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비롯한 여러 저작과 수원 화성 축조 때 발명한 거중기와 녹로(무거운 돌을 정확한 위치에 놓는 데 사용한 기구)의 모형 등이 전시돼 있었다. 조선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던 그의 다재다능함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지 탐방은 맞은편 생태공원을 돌아 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갈대밭을 따라 산책로를 거닐다,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에 슬쩍 눈길을 던져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돌아 나오는 길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글귀를 발견했다. 다산이 21세 약관에 봄날 수종사를 노닐며 지었다는 시. 겨울날 홀로 걷는 유랑객의 마음 역시 이와 진배없다.

고운 햇살 옷깃에 비추어 밝은데

麗景明衣袖

옅은 그림자 먼 밭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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