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봉 스님
1974년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봉암사, 백련암, 수도암 등
제방선원에서 32안거를 성만했다. 송광사 유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제11대, 제12대)을 역임했으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송광사 주지 소임을 살았다. 이후 송광사 산내암자 광원암에 주석하며 채마밭을
가꾸는 등 선농일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지난해 11월 제7대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으로 추대됐다.
조계총림 송광사의 제7대 방장 현봉 스님을 만나러 순천으로 향했다. 효봉 스님, 구산 스님 등 역대 큰스님들이 주석했다는 삼일암(三日庵)에 올라 현봉 스님과 마주 앉아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로부터 두 시간여, 편안한 분위기 속에 문답을 주고받았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명쾌한 답을 내어주시는 스님. 현봉 스님과 함께한 시간은 안개와 먼지로 탁한 바깥세상과 달리 맑고 향기롭기만 했다.
종교도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 예술로써 도(道)를 표현해야 한다
Q ─ 승좌법회가 있은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그러네요. 오늘이 12월 11일이니까, 딱 한 달이 됐네요. 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예불하고, 선방에 앉아서 정진하고 했습니다. 승가의 일상 그대로지요.
Q ─ 1차 산중총회(지난해 9월 30일) 뒤에 만행을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여정이었나요?
1차 산중총회 끝나고 몇몇 문제 제기가 있었어요. 한 달 뒤에 다시 총회를 열기로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절에 있기가 좀 복잡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겸사겸사 길을 떠났습니다. 먼저 제주도에 가서 빛의 벙커에서 열린 <구스타프 클림트>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전에도 한 번 다녀왔는데, 너무 인상 깊게 봤던지라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라산 백록담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만행에 접어들었습니다. 계획은 5대 적멸보궁을 참배하는 것이었어요. 먼저 설악산으로 향했습니다. 백담사에서 하루 자고,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올랐습니다. 그 후 차례로 양양 낙산사, 오대산, 월정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를 순례했습니다. 대략 20일 정도 걸렸을까요?
혼자 봇짐 메고 다니는 게 참 즐거웠습니다. 어깨는 좀 아팠지만요(웃음). 5대 적멸보궁을 향해 가는 길에 많은 사찰과 스님, 문화유적지도 만났고요. 개인적인 인연으로 알고 지낸 사람, 젊은 날 선방에서 함께 정진했던 도반, 송광사의 역사와 관련된 사찰과 스님들…. 세월 지나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인연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Q ─ 두 번이나 같은 전시에 가볼 만큼 클림트전을 인상 깊게 보셨다고 하셨는데요.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던가요?
미술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식견이 좁아서 직접 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요(웃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앞으로의 종교는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왜, 종교는 딱딱하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종교 인구는 점점 줄어들 거예요. 보통 사회의 고도성장 시기에 종교도 붐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저성장 시대가 되면 종교에 대한 관심도 다운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면, 문화적이고 선적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옛날 방식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요즘 강원에 새로 들어오는 스님들을 보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껴요. 하물며 스님도 그런데, 일반 대중이 불교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힘들까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된겁니다.
Q ─ 개인적 관심사에 더해, 한국불교의 내일을 생각하며 문화예술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계신 듯한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작품을 감상하는 관점도 좀 남다를 듯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전을 예로 들면, 말 그대로 빛으로 작품을 형상화해 놓은 전시였는데요. 그걸 보며 저는 화엄세계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내가 예술가라면 이런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다, 『화엄경』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중국의 돈황, 미얀마 바간, 또 한국의 불국사와 석굴암, 팔만대장경까지…. 불교에 얼마나 많은 소재가 있어요? 예불 소리나 만트라송 같은, 서양에서는 결코 본 적 없는 독특한 음악적 요소도 많고요. 이들은 단지 불교 문화유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작품들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면, 불교의 멋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정신까지 함께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을 사색하게 하고 반조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Q ─ 특별히 문화예술을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거기에 어떤 힘이 있다고 보시나요?
우리는 소위 육감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지요. 이제는 불교도 이런 육감을 통해, 각자의 기호에 맞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봅니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볼거리 좋아하는 사람은 볼거리로 말이죠. 본래 도(道)와 술(術)은 동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에요. 도가 본질이요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하면, 술은 그것을 드러내는 형이하학입니다. 제아무리 본질이 뛰어나고 고상해도 형이하학으로 표현되지 못하면 일반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옛날 한국불교가 문화의 선도자 역할을 했던 것 역시 문화적인 요소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영산회상곡에서 다양한 음악이 파생하고, 절에서 쓰던 악기와 사물로 승무나 사물놀이패가 발생하고…. 이것들이 대중속으로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포교로도 이어졌던 겁니다. 의식과 지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사람들 감성에 가닿아야 합니다. 문화예술에는 그런 힘이 내포되어 있어요. 울림과 끌림을 자아내는 힘 말이죠.
명상을 통한 내면의 성숙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최고 경쟁력,
지름길이 부처님 가르침에 있다.
Q ─ 최근 서구 사회에서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스님께선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더불어 한국불교가 현대의 명상 트렌드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양에서 명상이 유행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면서, 자신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상들이 벌어졌기 때문이죠. 일례로 첨단과학을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들, 그저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두루뭉술 넘어갔던 내용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잖아요. 또 하나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가속화되고 다양화되면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중 심축이 필요하게 된 겁니다. 자기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요즘같이 변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구심력이 약하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삶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엎어져 버려요. 구체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중심이 굳건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창조해 낼 수 없습니다. 기술적인 면은 이미 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왔잖아요. 심지어 기계가 더 잘하는 것도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자기 내면적인 것, 정신적인 성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그런 힘을 기를 수 있기에 사람들이 명상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사실 명상 전통은 한국불교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는데 우리가 그걸 모르고 살았다는 거예요. 서구에서 붐이 일자 그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정작 그들은 우리에게서 배워갔는데 말이에요. 지금이라도 부처님이 잘 정리해 둔 그 지름길을 잘 이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불교도 변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화두 하나 던져주고 벽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할 거예요? 현실 속 대중의 삶은 온갖 걱정과 고민, 스트레스로 가득한데 말이죠. 그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길을 제시해 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옛 전통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가자는 얘깁니다.
배움과 성장의 토대, 책 읽기는
내 안에 평생 먹을 양식을 쌓는 일이다
Q ─ 요즘 사람들은 종이책보다 핸드폰을 통해 각종 SNS로 정보를 얻는 데 익숙합니다. 이런 시대에도 종이책이 필요할까요? 여전히 종이책이 갖는 가치와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을 볼 때는 깊이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눈으로만 보면 그저 잉크 자국일 뿐이죠. 금방 휘발되어 버려요. 눈으로 보면서, 생각하면서 책을 보면 그 내용이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됩니다. 최근 본 영화보다 어릴 때 읽은 동화책이나 소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내 안에 각인된 내용은 때때로 떠올라 되새김질 됩니다. 바로 ‘온고(溫故)’지요. 그리고 매 순간, 상황에 따라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내적인 성장을 이뤄내죠. 옛말에 ‘읽고 읽고 또 읽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읽은 것이 의식 가운데 깊이 쌓여서, 마치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자신이 성숙해 감에 따라 깊이를 더 합니다. 책 말고 영상이나 소리, 감각으로 배우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내 안에 앙금을 쌓아 놓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배움의 폭 과 수준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책과 독서는, 특히 어린 아이일 때, 의식이 막 형성되는 시기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릴 때부터 성장의 밑거름을 단단하게 쌓아가면 그 힘이 배로 커지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집중력 향상입니다. 책 읽을 때는 온 정신이 책에만 맞춰집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집중하는 자세가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죠. 이렇게 좋은 책, 많이들 보세요. 읽고 또 읽으세요(웃음).
어른이란, 나와 나 아닌 것들을 위해
영적인 성숙을 계발해 나가는 자
Q ─ 스님은 총림이라는 큰절의 어른이십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 몸뚱이란 늘 변화하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성장이고, 안 좋게 보면 태어날 때 천진무구했던 것이 물들어가는 것이고…. 어쨌든 이 변화는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수히 많은 인류로 이어집니다. 지금 내가 여기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했겠어요? 그들의 DNA가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 조상에게 이어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로 이어져 마침내 내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진 DNA는 시간이 지나 나의 자녀로, 자녀의 자녀로 이어져 또 수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겠지요. 이런 생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나 아닌 것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 단지 건강한 몸 말고 그안에 무엇을 담아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른이란, 성장이란 이런 넓은 범주에서 전체를 관조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짐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해요. 그저 나이 들고, 사회적 명예나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나와 나로부터 이어진 생들이 그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대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영적인 성숙을 계발해 나가는 것.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갈등을 풀어내는 열쇠 공과 연기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한 팔정도의 실천
Q ─ 현재 우리나라는 갈등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대 간, 남녀 간, 지역 간 갈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시대를 헤쳐갈 불교적 해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역사적·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혼란스러운 환경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강들 틈에 끼어서, 얼마나 많은 곡절을 겪었어요? 게다가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면서 여러 가지 혼란이 가중되었죠. 요즘은 또 어떻습니까. 옛날엔 100년에 걸쳐 바뀔 것이, 지금은 1년이 채 안 돼 변해버리잖아요. 그 속도가 얼마나 빠릅니까?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요. 다만 빠르게 굴러가는, 복잡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 보니까 몇몇 갈등과 모순이 생겨난 거죠. 저는 이것을 부정적으로 만 보지 않습니다. 한류라고 해서 한국 문화예술,
그리고 기술력이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잖아요. 그것도 다 같은 환경에서 비롯된 겁니다. 삶의 양면인 셈이죠. 한쪽에서 바라보면 한쪽밖에 안 보입니다. 시대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면, 완전히 잘못된 세상인 것처럼 여겨지지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잘하는 것은 더 개발해 나가고, 부족한 것은 채워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갈등에 대한 불교적 해법이라고 하면, 팔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공성과 연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 삶 속에서 팔정도를 실천해 나가면 어떤 문제든 풀 수 있습니다.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어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단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더 나은 사회로 노를 저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전통이 살아 있는 한국 승가의 기둥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열린 도량
방장스님이 그리는 송광사의 모습
Q ─ 승보종찰 송광사의 방장으로서, 앞으로 송광사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시나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불교의 모습을 강조해 말씀드렸지만, 사실 그만큼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송광사는 한국불교에서 가장 뿌리 깊은 전통을 간직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조 스님을 비롯한 16국사, 효봉 스님과 구산 스님 등 근현대 큰스님들이 한국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해 온 곳이니까요. 지금도 그런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낮에 점심 공양할 때도, 발우공양하면서 소심경을 외고 오관게를 외며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살리라 다짐하면서 먹었어요. 수좌는 수좌대로, 사미스님들 역시 법도와 절도에 맞게 생활합니다. 그래서 송광사에서 생활을 하거나 수행한 스님들은 다른데 가면 확 티가 난다고들 말합니다. 저는 송광사가 예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많은 뛰어난 스님을 배출해 내는 도량이자 한국불교 승가의 기둥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우리 스님들이 역사와 전통을 잘 간직하고 계승해 나가는 한편, 바깥의 불자들이 언제든 찾아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요. 이를 위해서, 스님들이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종교와 세대를 초월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방장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Q ─ 2019년이 가고,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도 치열하게, 뜨겁게 살아가고 있을 이 시대 사람들에게 따뜻한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0년,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며 한창 야단 법석을 떨었지요. 새로운 변혁의 시대가 열렸다면서 말이죠.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또 한 번 새로운 변혁을 맞이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내면의 변화와 정신적 성숙을 위한 변화 말이죠. 2020년 한 해는 각자 내면을 성찰하면서 안팎으로, 물질과 정신 양면에서 큰 성장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글.
양민호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