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의 숨은 스님들] 10년, 장구한 문장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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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숨은 스님들] 10년, 장구한 문장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 이광이
  • 승인 2019.12.04 10: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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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암 진명 스님

 

끝보다 끝 바로 전이 더 끝 같다. 조금 더 가면 끝일 때, 끝이라고 느끼는 것은 거기다. 끝에 다다르면 끝은 없다. 가는 사람은 가지 않고, 비는 내리지 않는 것처럼, 끝에서는 끝을 볼 수 없다. 이미 끝이기 때문에, 끝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간다 하더라도, 거기가 끝일 수는 없다.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과정일 뿐. 그러므로 끝은 끝을 향해 가는 그 애절한 시간 속에 있다. 11월이 그렇다. 한 해의 끝은 12월이지만, 11월이 더 끝 같다. 11월이 그런 것은, 겨울로 가는 길이며, 물끄러미 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끝인 밤도 그렇다. 사위가 어두워 칠흑 같은 밤중이 되어서는 밤이 없다. 해는 져서 사방이 어둑어둑하고 땅

거미가 짙어지는 그때에, 저 서편에서 밤이 오는 것이 보인다. 어슬어슬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을 바라보며 두루두루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 사랑보다 더 사랑 같은 것은 아직 사랑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랑 바로 앞에 있을 때다. 가슴 두근거리고,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때, 밤새 잠 못 이루는 애달픈 시간들이 사실은 사랑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중에는 사랑보다 더 사랑 같은, 사랑이 익어가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끝과 밤과 사랑 같은 것들은 어느 목적지에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하고도 애절한 여정에 있지 않은가 한다.

“야생성이 사라지면 멋이 없어, 거칠고 막된놈도 일견 중다운 면이 있거든”

지리산 암자, 12번째 길이다. 한 해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왔다. 늦가을 지리산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그러나 눈이 오면 설산 지리산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그러다 봄이 되어 온통 철쭉이 피어나면? 하니, 지리산은 안 아름다울 때가 없고, 내가 서 있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리산 남쪽 깊은 곳의 아란야, 관음암. 진명 스님 찾아가는 길이다. 산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그 붉은 가을빛과 낙엽 구르는 소리, 모과의 향기, 산에서 딴 감의 단맛, 밟고 선 땅의 감촉들, 그런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에 더해 저 아란야에서 나머지 하나, ‘법(法)’을 찾아 ‘육경(六境)’을 맛보게 될까? 지리산 갈 때마다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이 작은 토굴에는 다섯 번째 가는 길이다.

“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볕이 드는 마루가 좋아요. 여기들 앉으세요.”

마루에 걸터앉아 물었다. 나는 늘 혼자 어찌 사시냐고 묻는다. 우번대 법종 스님은 40년을 살았고, 상무주암 현기 스님은 30년을 넘게 혼자 살았는데, 한 사나흘 지난 것 같더라고 했다. “술은 음지에서 익히는 거잖아요? 도(道)도 음지에서 익는 거고, 지금 그러는 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 하하. 뭔가가 털어져 나가는 것 같습디다. 속세의 홍진, 내 마음속의 티끌들, 마음이 더 맑아지고 좋습니다.”

마당 앞에 늙은 고로쇠나무, 키가 하늘로 뻗 었다. 그 가지에 새가 날아와 앉고는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산짐승들이 가끔 오고 갈 것이다. 스님이 자기 먹을 것을 좀 나눠줄 것이고. “산속에서 게으르면 못살아요. 혼자 살면 대충 살 것 같죠? 게으르면 한없이 게으르게 되고 나중에 밥도 안 해 먹게 됩니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게 살아야 돼요. 그래서 토굴이 대중방보다 어렵다고 하는 거 같아요. 그동안 새벽예불도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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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곤 2020-01-01 16:57:06
성불하십시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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