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의 숨은 스님들] 암자는 깨달음을 숙성시키는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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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숨은 스님들] 암자는 깨달음을 숙성시키는 곳이라!
  • 이광이
  • 승인 2019.08.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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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사 현보 스님

늙은 법당 앞에 핀 여름 꽃들이 아름답다. 연꽃, 배롱나무, 자귀나무, 능소화, 수국, 해바라기 등 등. 연꽃은 주위에 못이 있으면 온통 점령하듯이 피어 ‘연못(蓮池)’이다. 못이 없어도 절 마당 절구 통 안에 꼭 한자리는 차지하고 있다. 배롱나무의 마른 표피는 산사에 갇혀 있던 오랜 침묵, 혹은 노인의 등뼈 같다. 그것을 무욕으로 보아 절 마당에 많이 심는다. 흰 배롱나무꽃이 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음을 맑게 가라앉혀 준다. 수국 은 녹색을 띤 흰 꽃, 청색, 홍색, 자색 등으로 종류가 여럿이다. 청색은 깊은 바다색 같다. 꽃 색이 종자에 따라 다른 줄 알았더니, 산성은 청색, 알칼리성은 적색, 이런 식으로 토양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안국사(安國寺)에 들어서니, 법당 앞에 진파랑 수국, 작은 배롱나무 한 그루, 담장에 능소화가 피어 있는, 어디에선가 보았던 옛 절집이다. 무성 한 여름 오전, 절 마당엔 불볕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 사시예불 전인데,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청 아한 목탁 소리, 묵직한 염불 소리, 한줄기 바람처럼 소나기처럼, 한여름의 적막을 베고 지나간 다. 스님 혼자 기도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아무 도 없는 암자에서, 듣는 이 없는 법당에서, 가사 장삼 갖춰 입고 벌써 1시간 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독경을 한참 하고, 기도 말미에 ‘서 울시 종로구 창신동 아무개 보체(保體)’ 하는 식의 축원도 잊지 않는다. 보는 이 없으니 기도를 거르 고 대략 하건마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바른 지 계(持戒)의 시간이 지나간다. 나는 이날 말고 전에 도 안국사에 들렀었는데, 그날도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보았다. 나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 만, 스님은 다음에 오라고 하여, 그 길로 내려갔 다가, 지금 다시 찾은 것이다. “자, 차 한잔하러 갑시다!” 사람들이 그러하듯 스님들도 그런다. 두 번 만나면 구면이고, 구면이면 반갑다. 말이 쉽게 나 오고, 나가는 말들이 많아지고, 사이는 좋아지는 것이다. “텅 빈 산중 암자에서 홀로 독경하는 모습이 경건하고요, 진짜 절에 온 것 같습니다.”

 

“양쪽에 그 믿음을 지켜주시는 거네요.”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동기가 순수 한 믿음, 알음알이를 떠난 믿음. 자신을 믿지 못 하는 사람은 남도 믿지 못하지. 불교는 지혜의 종 교이지만, 사실은 믿음이 지혜보다 빠르거든.” 현보 스님, 용타 스님 상좌고 청화 스님 손상 좌다. 3년 늦어 전남대 경제학과 72학번. 교지 편 집장으로 일했고, 5· 18의 마지막 수배자 고(故) 윤 한봉 열사와 한 시대를 보낸 운동권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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