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지리산에 7암자 코스가 셋 있다. 하루 등산하기 좋을 거리의 7개 사암(寺庵)을 묶어 당일 코스로 만든 것이다. 왜 하필 일곱 개일까 하면, 불교에 칠정[喜怒憂懼愛憎欲]이 있고, 안이비설(眼耳鼻舌)의 구멍도 일곱 개[七竅]이고, 저 일곱 선녀가 내려앉은 칠선계곡이 있고, 허황후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칠불사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일곱으로 묶는 것이 그럴싸하다. 윤달 삼사(三寺) 순례만 해도 무병장수 극락왕생인데, 하루 7암자는 그 수치만으로도 벌써 두 배가 넘으니, 공덕도 그만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지리산도 어지간히 다녀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매번 종주만 하고 다니기도 그렇다. 굽이굽이 열두 폭 치맛자락을 하나씩 파고 들어가 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는 것인데, 말하자면 총론에서 각론으로, 중급에서 고급으로 산에 다니는 실력이 느는 것이다. 그 대상으로 7암자만 한 것이 없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빠듯하게 걸어야 7암자를 다 돌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뭔가 뿌듯한, 분명 장수할 것 같은 성취감이 밀려온다. 그것이 매력이다. 제일 유명한 코스가 삼정산 능선이다.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북쪽에서 지리산 주능선의 장쾌하고 시원한 곡선을 조망할 수 있다. 그다음이 ‘헛절’ 7암자다. 지리산 동북부 쪽으로 절은 사라지고 암자 터[庵址]만 남은 곳을 다니는 코스다. 적조암 → 지장사터 → 금낭굴암터 → 선열암터 → 유슬이굴암터→ 고열암터 → 신열암터. 조선의 문신 김종직이 함양 태수를 하던 시절(1472), 지리산을 5일간 둘러보고 산행기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는데, 거기에 지장사 선열암·신열암·독녀암·고열암등 많은 사암이 나온다. 현존하는 것은 없고, 터만 남아 사람들이 그 기록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이다. 지리산 남쪽으로는 구례 천은사로 시작하는 7암자 코스가 있다. 천은사 → 견성암 → 수도선암 → 상선암 → 우번대 → 삼일암 → 도계암. 천은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 근처까지 U턴하여 돌아오면서 천은사 산내 암자를 망라하는 것이다. 이 코스가 제일 짧고 수월하다. 거기 견성암을 찾아가는 길이다.
“스님, 천은사 입장료 폐지한 뒤로 좀 달라진 게 있습니까?”
“석 달 되어 가는데, 달라진 게 뭐 있겠나?
매양 비슷하지”
천은사에서 산길로 10여 분 올라가면 견성암(見性庵)이 있다. 거기 종고 스님이 개 하고 둘이 산다. 풍산개라 풍채도 좋고 야무지게 생겼다. 풍산개 세 마리면 호랑이하고도 맞장을 뜬다는것인데, 가끔 절 근처에 내려오는 멧돼지를 물어 죽이는 모양이다. “살생의 업이 큰일”이라고 스님이 그런다. 나는 지리산 갈 때 가끔 여기들러 차도 한잔 얻어 마시고, 이런저런 세상사는 얘기를 듣고 나오기도 한다. 일전에 천은사에 출가하겠다고 온 사람이 있어 기쁘게 반겼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좀 많았다. 환갑을 넘겼으니, 행자가 아니라 큰 스님 뻘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행자 방에 박을 반으로 쪼개 적어 걸어 놓은 ‘하심(下心)’과 ‘묵언(黙言)’을 배우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잇값을 한 것이다. 스님들이 뭐라 해도 행자 오불관언이었다. 절 마당을 쓸라고 스님이 일을 시키면, 딱 뒷짐을 지고는 “그러는 스님은 몇 살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다. 스님들이 대책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견성암으로 종고 스님을 찾아왔다. 그래서 스님이 그 길로 내려가 단칼에 제압해버리고 말았으니.
“행자 이리 와봐라, 행자 나이가 얼마고?”
“허허 내가 환갑이 넘었는데…요.”
“아 그래? 그러면 이순(耳順)이구나. 혹 종심(從心)이라고 들어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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