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연기(緣起)의 지혜와 자비심-화의 소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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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연기(緣起)의 지혜와 자비심-화의 소멸 2
  • 일묵스님
  • 승인 2019.07.2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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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량심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기억하라(2)

함께 기뻐함은 들뜸이 있는 기뻐함과 구분해야 합니다. 서로가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하게 마음이 들떠서 기뻐하는 것은 해로운 법입니다. 함께 기뻐함은 단지 상대의 성공에 대하여 마음의 동요 없이 함께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기뻐함은 질투심을 버리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질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흔한 속담처럼 남이 잘된 것에 샘을 내는 것이지만 함께 기뻐함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방(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에서는 누가 선한 행위를 하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사-두, 사-두, 사-두’ 하고 세 번 말해줍니다. 사-두(sādhu)는 ‘잘했다’, ‘훌륭하다’는 의미로 『금강경』에 나오는 선재(善哉)와 같은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평온함은 자애와 연민, 함께 기뻐함의 모든 선행을 했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했다’며 자만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평온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남에게 무관심한 것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행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한 것이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결국에는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이러한 지혜를 갖고 한 걸음 물러서서 중립적으로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 중 하나가 ‘나’라고 하는 것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의해 결합된 것이라는 무아(無我) 사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건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이해하면 ‘나’라는 것도 그물망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존재할 뿐 나와 남이라는 것을 따로 떼어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는 연기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지혜가 있으면 남을 위하는 자비심이 생기고, 자비심이 바탕이 되면 마음이 안정되어 지혜가 생기는 조건이 됩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지혜가 생기고, 지혜를 바탕으로 자비심이 드러나는 것이 불교 본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지혜의 마음이 드러나면 직면하는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설사 문제가 즉각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인내하며 극복할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하게 살면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누가 나에게 악한 짓을 해도 무조건 참고 내버려 두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선(善)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화를 내는 대신 지혜와 자비가 있는 마음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충고해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는 오히려 거기에서 훨씬 더 신뢰감을 느끼고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화를 내지 않고 편안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남이 쉽게 보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제자가 어리석은 언행을 하는 경우에는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다만 그것은 그 사람을 위해 유익한 것을 알려 주신 것일 뿐이지, 그때 부처님의 마음에 흔들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멀리 내다보았을 때 어떤 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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