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象象붓다] 갤러리 수 <멈춤과 통찰(Samantha & Vipassana)>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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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象붓다] 갤러리 수 <멈춤과 통찰(Samantha & Vipassana)> 전시 리뷰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9.05.28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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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하는 명상 수행
최선 <오수회화(적분의 그림)> 캔버스에 아크릴, 81.6 X 60.5cm, 2019

삼청동에 위치한 갤러리 수에서는 지금 불교와 명상을 키워드로 한 현대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용호, 서고운, 이피, 최선 네 명의 작가가 명상 수행에 푹 빠져 있는 기획자 변홍철(그레이월 대표,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겸임교수)과 만나 ‘멈춤과 통찰’을 이야기하는 현장에 다녀왔다.

|    불이(不二)의 문을 지나 그림을 살게 하다

작가 최선이 그림의 소재로 삼는 것들은 독특하다. 오염된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 자국의 패턴이나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터져 있는 오디들, 침을 뱉은 모양 등이 그것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더욱 유다르다. 모유를 모아 캔버스에 발라 자연스럽게 부패되는 과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동냥젖(흰그림)>이나 소각장에서 얻은 사람의 뼛가루를 전시장 바닥에 흩뿌려 놓은 <실바람>, 그럴듯한 추상 조각처럼 보이는 씹다 만 껌들 <깎지도 붙이지도 않고 허약하면서 거창하게 만들기> 등.

어찌 보면 캔버스 천에 물감을 발라 놓은 것뿐인 회화에 대단한 가치가 부여되고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곤 하는 미술계의 풍토에 작가는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고뇌를 바탕으로 ‘말 되는 예술’을 위해 ‘말 안 되는 예술’을 해왔다. 지금 여기 두 발 딛고 서 있는 나의 현실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아 ‘가짜’처럼 느껴지는 그림보다 침이나 모유, 뼛가루처럼 내 피부에 찐하게 맞닿아 있는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진짜’ 회화의 소재가 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추한 것인지에 대한 관념을 재고하게 하는 그의 그림. 그래서 화려한 유리잔에 담긴 값비싼 샴페인보다는 생활 폐수에 둥둥 떠 있는 기름 자국을 담고 있다. 말은 <오수회화>지만 전시장을 거닐며 만나는 그의 작품들은 그리 흉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예쁘다. 한 점 사서 거실에 걸어놓고 싶은 적당한 크기에 흰색과 파란색 혹은 검정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꽤나 장식적인 그림이다. 작가가 이루고자 하는 경지는 미와 추의 분별을 넘어 진실로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환영의 뇌사 상태를 지속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회화의 숨통을 

끊고 싶다. 그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말이다. 

더욱 볼 것 없이, 더욱 가난하게, 하지만 더욱 더 진솔하게.”

- 최선, 작가 노트 중

|    나를 살피는 그림

전시장 2층, 금색 세필선이 돋보이는 거대한 그림은 이피 작가의 작품이다. 스스로 크리스천이라 이야기하지만 불화의 기법을 배워 작품에 응용해온 그의 작품에서는 불화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 그리고 연기의 그물 속에서 자신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세상 만물을 소재로 초현실과 현실, 상상과 일상의 경계를 그려낸다.

전시된 <난자의 난자>에 등장하는 수많은 상징물은 이것이 무엇인지 형언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상징물들이 금색의 외곽선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독립된 개체로 작품에 드러나 있다. 타오르는 양초나 날개가 달린 연필, 제목에서 유추해 보아 난자들인 것처럼 보이는 둥근 형상들도 뭉개짐 없이 모두 금색의 필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스스로를 돌이켜 비추어 보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위빠사나처럼 작가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되 그 자체의 형태를 보존하며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내가 주관적인 몸이 되는 것은 나의 행동, 나의 활동이 아니라 타자들의 부딪쳐옴이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나는 이 타자들을 내 몸에 접착함으로서 비로소 나의 주관성을 얻었다. 나는 타자에 의해서 나를 감응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대상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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