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불교개론]공(空)이란 무엇인가?
상태바
[다시 쓰는 불교개론]공(空)이란 무엇인가?
  • 장휘옥, 김사업
  • 승인 2019.05.28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기(緣起), 그것을 우리는 공(空)이라고 부른다.” 

(『중론』 제24장 관사제품 제18송 전반부)

“자성(自性)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론』 제15장 관유무품 제2송 후반부)

|    연기(緣起)에 대한 오해

모든 것은 조건(=인연)에 의존하여 생겨나며, 그 조건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라고 했다. 그런데 연기를 이렇게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

흰 종이 한 장과 파란 종이 한 장이 간격을 두고 떨어진 채 놓여 있다. 바람이 불어와 두 종이는 서로 겹치게 되었다. 얼마 후 다시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두 종이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멀리 날아가 서로 떨어졌다. 그러나 흰 종이는 변함없이 여전히 흰 종이고, 파란 종이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흰 종이와 파란 종이가 바람이라는 조건에 의존하여 서로 붙게 되었고, 그 후에 불어온 세찬 바람이라는 다른 조건에 의해 서로 떨어졌다’라고 생각해서, 조건에 의존하여 서로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했으므로, 이것이 바로 ‘연기’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이해하면 타당할까? 얼핏 보면 맞는 것 같다. 더구나 위와 같이 말로 표현해 놓고 ‘조건에 의존하여’, ‘조건에 의해’라는 문구에만 주목하면 연기의 사례로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불교 역사에서 이와 유사하게 연기를 이해한 부파도 있었다.

위의 예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두 색깔의 종이는 붙기 전에도 각각 흰 종이와 파란 종이였고, 떨어진 후에도 변함없이 각각 흰 종이와 파란 종이다. 단지 바람이라는 조건에 의해 서로 붙었다가 떨어졌다 했을 뿐이다. 연기를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다시 말해 두 종이는 늘 그대로이고 바람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붙었다 떨어졌다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연기는 고정불변인 어떤 것이 조건에 의해 서로 결합하거나 분리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연기를 이렇게 알고 있다면, 나에게 불행이나 행복이 생겼을 때 그 원인 파악이나 해결책 강구도 이에 맞추어 진행될 것이다. 흰 종이 대신에 나를 대입하고 파란 종이 대신 불행이나 행복을 대입한 뒤, 흰 종이에 파란 종이가 붙듯이 ‘나에게 불행과 행복이 생겼다’고 이해하면 나름대로 그 원인이나 해결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저 사람을 만나서 불행하다’, ‘가난해서 불행하다’는 경우를 위의 연기 이해 방식에 맞추어 살펴보자. 저 사람은 원래가 불행 덩어리인 파란 종이고, 가난도 원래가 불행 그 자체인 파란 종이다. 나는 이러한 것과 별개로 독립되어 있으며 언제나 나로서 지속되는 흰 종이다. 나에게 불행이 생긴 것은, 흰 종이에 파란 종이가 붙듯이 불행 그 자체인 ‘저 사람’과 ‘가난’이 여러 조건에 의해 나와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에게서 불행 그 자체인 ‘저 사람’과 ‘가난’을 분리시키는 여러 조건을 만들어 그것들에서 내가 멀리 떨어지는 것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거나,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 가난을 떨쳐 내어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멀리 떨어졌다 해도 또 조건이 갖추어져 그것이 나와 결부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불행해진다. 그것이 나와 결부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렇다면 영원한 평안인 열반에 이르는 길은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여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 이외에는 없다.

연기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나온 것이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이다. 공사상의 견지에서 보면, 흰 종이와 파란 종이도 연기한 것이므로 언제나 변함없는 흰 종이·푸른 종이는 없다. 착각에 불과하다. 흰 종이와 푸른 종이는 지금 상태 아래서만 그 색일 뿐, 다른 조건에 들어가면 다른 색으로 변한다. 그 종이의 색깔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무엇이라고 결정해서 말할 수 없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