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벨기에 한식 요리가 애진 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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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벨기에 한식 요리가 애진 허이스
  • 김우진
  • 승인 2019.05.28 15: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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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이뤄낸 한식 요리 전문가
사진:최배문

벨기에에서 온 한 외국인이 김천 청암사로 향했다. 한국의 맛을 찾아온 그의 이름은 애진 허이스(42). 사찰 음식을 배우려는 그녀에게 한국의 여러 인연들이 도움을 주어 청암사와 연결이 됐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기에 통역을 통해 스님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지도하던 스님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색하던 첫 만남은 경내를 돌아보고 사찰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함께 음식을 조리하면서, 음식을 사랑하는 서로의 마음이 통했는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    고향에서 고향으로, 기억을 되살리는 한식

한국에서 벨기에로, 다시 한국으로 긴 인연을 이어가며 살아온 애진 씨. 그녀는 입양아다. 애진 씨가 벨기에로 입양된 시기는 한창 궁금증 많을 일곱 살 정도였다.

“많은 것들이 기억이 나요. 서울 마포구에 살았어요. 아버지가 있었고 재혼한 새어머니가 세 명의 자매를 데리고 와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집에는 늘 새어머니와 저만 남아있었습니다. 장독대를 열어 장을 맛본 기억이나 동네에서 또래들과 뛰어놀던 기억이 나요. 오래된 기억이라 조작되거나 왜곡됐을 수도 있지만, 뱀을 구워 먹은 기억도 있어요. 더듬어 보면 장면과 분위기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진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새어머니는 어린 딸을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다. 탁아소로 향하던 날, 모든 것이 생경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비행기를 타게 됐고 먼 세상에 던져졌다. 벨기에였다. 새 부모님이 자신을 끌어안았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낯선 세상에서 그녀는 고립되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자신 안에서 긴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런 시간을 견뎌 지금의 단단하고 강한 내면의 힘이 완성됐다. 돌아보면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한 새어머니의 상황도 이해가 갔다. 급작스럽게 사랑하는 이가 죽고 보살펴야 할 네 명의 딸이 자신을 쳐다볼 때, 얼마나 겁이 났을까.

“새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없었습니다. 원망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당장에 펼쳐진 상황 자체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벨기에 새 부모님의 딸이 되는 과정들이 한순간에 닥쳐왔습니다. 그 상황만으로 감당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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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2019-06-09 10:41:37
이 스님이 사찰음식으로 나오는 거 이상하네~
내공도 안 느껴지고 잘 하는지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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