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으로 향하는 길은 푸르렀다. 쭉 뻗은 고속도로 양옆으로 햇살을 머금은 초록빛 잎사귀들이 봄의 절정을 지나 이른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은 초행이라 마치 관광객인 된 듯 골목을 걸었다. 동국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잘 알려진 동국사는 일제강점기 36년간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었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니 저만치 ‘평화의 소녀상’이 방문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가 또 있었는데, 바로 동국사의 명물 고양이다. 경내로 들어가니 이미 몇몇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우리 만냥이는 사람을 잘 따라요. 아침 10시에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면 대웅전 앞마당으로 나와서 먼저 애교를 부립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예뻐한다는 걸 스스로 아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으면 모델처럼 포즈도 취해주다가 관광객들이 사찰 문을 빠져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니까요.”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은 첫 만남에 ‘만냥이’부터 소개했다. 만냥이는 동국사 여덟 마리 고양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고양이다(참고로, 동국사에는 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개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만냥이가 동국사로 오게 된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미있게도 만냥이가 태어난 곳은 절이 아니라 성당이었다. 종걸 스님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와 친분이 있어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이어왔다고 한다.
“2015년 가을, 김인국 신부가 계시는 충북 옥천 성당을 방문했는데 새끼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얻어 왔죠. 혹시나 절의 보살님들한테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봐 제 방 이불 속에서 한 달간 몰래 키웠어요.”
그 전까지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 없던 종걸 스님은 사람이 먹는 우유를 먹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들을 위해 고양이 우유까지 사다 주며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절에서 일하는 보살님한테 결국 들키게 됐지만 스님이 생각하셨던 것처럼 큰 우려는 없었다. 그제야 스님은 고양이 세 마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게 됐다. 얼룩이 제일 많은 고양이가 만냥이, 두 번째로 많은 고양이는 천냥이, 얼룩이 많지 않은 고양이는 백냥이가 되었다.
“셋 중에 가장 약했던 백냥이는 한 달이 지나서 자연사했어요. 사찰 뒷마당에 있는 나무 밑에 묻어줬죠. 천냥이도 사람을 잘 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CCTV를 확인해보니 어느 관광객이 데려갔더라고요. 사랑으로 키우던 고양이었는데 그렇게 헤어지게 되어 많이 속상했죠.”
그렇게 성당에서 데려온 고양이 세 마리 가운데 만냥이만 동국사에 남게 됐고, 만냥이는 두 번에 걸쳐 열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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