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남원 귀정사 중묵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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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남원 귀정사 중묵 처사
  • 김우진
  • 승인 2019.04.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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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들 때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사진:최배문

남원시 산동면 대상 마을. 귀정사가 자리한 곳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시골의 조용한 동네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이라 세상과 단절된 기분마저 든다. 그곳에 도시 한가운데서 치열하게 살던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저마다 하나씩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해보겠다며 귀정사로 향했다.

|    주지에서 관리인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귀정사를 찾아 담당자를 만났다. 중묵 처사. 스스로를 처사로 칭하고 종무실장 역할을 하는 중묵 처사는 14년 전 처음 귀정사에 들어와 지금의 모습으로 재정비한 일등공신이다. 흔적만 남아있던 절에서 활동가들의 쉼터라고 불리기까지, 귀정사와 중묵 처사 모두 할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은 환속을 했지만, 도법 스님 인연으로 1995년에 출가를 했습니다. 제가 장애가 있어서 출가를 하기까지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도법 스님의 배려로 출가자가 된 뒤에는 실상사에서 계속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곳 귀정사로 오게 되었죠.”

2006년, 중묵 처사는 관리할 사람이 없던 절인 귀정사 주지로 부임했다. 귀정사는 마을과도 제법 거리가 있고, 인적이 드문 산어귀에 있어 접근성이 낮았다. 보수해야 할 건물이 대부분이고, 새로 증축해야 할 것도 있었다. 중묵 처사는 주지로 있던 3년간 불사를 진행했다.

찬란한 자연 속에 사람은 혼자였다. 예불 올리고 밥 해먹으며 살았다. 그래도 이렇게 절이 사라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중묵 처사는 인근에 마을이 있었기에 그래도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기도를 하기 위해 종종 찾는 마을 주민들 덕이라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발심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말이야 당연히 하는 거지만, 글씨를 써야 할 때는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한글학당을 열었습니다. 절까지 올라오기 힘드니까 제가 마을 회관으로 내려갔어요. 귀정사가 이런 활동을 하는 걸 마을 주민들이 또 좋게 보셨어요. 국가 지원을 담당하는 지역 관리들도 귀정사의 주민 활동을 들었는지 3년간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운이 좋았죠.”

3년 불사 후 그는 옷을 벗었다. 환속해서 다시 재가불자가 되었다. 파계한 사람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다시는 절집과 인연 맺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한 번 이어진 인연의 끈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앞으로 재가자들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도법 스님 말씀을 저버릴 수 없었다. 결국 귀정사로 돌아와 주지가 아닌 관리인으로 소임을 시작했다. 스님일 때는 몰랐던 세상의 모습이 보였다. 부처님 가르침을 새로운 방면으로 생각하고, 몸소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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