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상태바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 틱낫한
  • 승인 2019.03.11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틱낫한 스님의 생애와 가장 심오하고 본질적인 삶의 가르침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저작·역자 틱낫한 지음, 이현주 옮김 정가 15,000원
출간일 2019-03-06 분야 에세이/종교(불교)
책정보

판형_140*214mm
두께_14mm_224쪽_2도
ISBN 978-89-7479-656-3(03840)

구매사이트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알라딘
책소개 위로

2018년 고향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한, 아흔넷의 틱낫한 스님이 들려주는
지금 여기 가장 행복하게 존재하는 법에 관한 메시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책은 종교지도자, 평화 운동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틱낫한 스님의 산문집이다. 베트남에서의 어린 시절, 출가, 전쟁과 망명 생활,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자두마을)’ 공동체 설립, 그리고 전 세계를 다니며 가르침을 펼치는 동안의 따듯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그동안 스님이 펴낸 저서와는 다르게, 40여 년 간 망명인으로 살아야 했던 고단함 속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치유했던 솔직한 고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틱낫한 스님 특유의 간결한 언어로 그려지는 ‘깨달음의 순간들’은 우리 가슴속으로 따듯하게 흘러들어 마치 내가 그 깨달음의 주인공인 듯 느껴진다. 우리 스스로 깨어나도록 하는 데 평생을 바친 틱낫한 스님의 삶은 한 인간이 남기는 발자국의 크기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나’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실한 답, 바로 그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저자 소개 | 틱낫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불교 스승 중 한 명이자 시인이자 평화운동가. 불교 사상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며 참여불교운동 및 각종 사회운동을 해오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 세계를 돌며 베트남의 참상을 멈추고자 평화운동을 펼쳤고, 이에 1967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추천을 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빌미가 되어 남·북 베트남 정부 모두 그의 입국을 불허하였고, 1967년부터 틱낫한은 39년이라는 긴 세월을 망명객으로 살아왔다. 1982년부터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명상 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세워 마음챙김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평화로워지는 가르침을 전 세계인과 나누었다. 세속 나이 아흔넷에 이른 스님은 “이제 내 인생의 수레바퀴가 멈추려 한다.”고 밝히며 2018년 12월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현재 열여섯 살에 출가했던 투 히에우 사찰에 머물며 조용한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틱낫한 기도의 힘》, 《틱낫한 명상》, 《화해》, 《화》,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등이 있다.


옮긴이 | 이현주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목차 위로

서문_ 세상의 고향집에서

베트남에서의 삶
과자 먹기 | 사랑할 시간 | 변소 청소하는 즐거움 | 나뭇잎 | 붓다의 초상 | 만화경 | 은자隱者와 샘 | 스승의 선물 | 스승의 법의法衣 | 바나나 잎 | 벚나무에 꽃이 필 무렵 | 문 닫기 | 리아 잎 | 설거지 | 두리안 | 차오르는 밀물 소리

전쟁과 망명
마지막 쌀자루 | 어느 프랑스군 병사 | 신선한 허브 | 포기하지 말 것 | 보는 것의 쓸모 | 비행장 | 무더위 | 든든한 땅의 바다에서 | 코코넛 스님 | 전투현장에서의 마음챙김 | 탄원서 | 마틴 루서 킹 보살 | 양심수良心囚 | 중앙에서 온 사람 | 여긴 중국이 아니다! | 알프레드 핫슬러 |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 다오 | 전쟁의 상처 치유하기 | 수련은 보트다 | 첫 개화開花 | 대나무 덤불

꽃피는 자두마을
바람에 묻힌 오두막 | 슬리핑백을 즐기다 | 푸조 | 모네 씨와 삼나무 | 금송金松 | 책 제본 | 사과주스와 솔방울 | 글쓰기의 행복 | 연꽃 차茶 | 오빠와 누이동생 | 못 | 보리수나무 | 껴안기 명상 | 오렌지 명상 | 낙엽 모으기 | 숨 쉬기와 낫질 | 수학 교사 | 우리 뜰의 야자수 | 사랑에 빠지다 | 고목에 피는 꽃 | 숨바꼭질

세상의 고향집에서
서로 인사하기 | 종鐘 | 고대 유럽의 영혼 | 장터의 꿈 | 붓다의 발자취 | 2분간의 평화 | 자비의 물방울 | 인도에서의 몇 시간 | 편안하게 버스 타기 | 올리브나무들 | 자유로이 걷기

나는 이르렀다
강의실의 꿈 | 상추 | 나의 두 손 | 네 손을 들여다보라 | 담배 좀 달라고 | 물결과 물 | 구글플렉스 | 이 버스에 붓다가 타셨는가? | 시골길 걷기 | 한 걸음 | 귀속歸屬 | 험악하고 온유한 보살 | 우주인 | 가을 낙엽 | 고향집 찾기 | 삶이 우리의 진짜 고향집이다 | 나는 여기 안에 있지 않다

틱낫한의 간추린 발자취
옮긴이의 말

상세소개 위로

따듯한 일화로 만나는 틱낫한 스님의 삶,
그 속에 빛나는 지혜들

틱낫한 스님은 종교를 떠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주는, 존경 받는 스승 중의 한 분이다. 70년 동안 전 세계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참여불교와 예술과 마음챙김을 가르쳐온 그는, 1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펴내고 여러 언어로 번역, 수백만 권이 팔렸다. 쉽고 친절한 말로 불교를 풀어쓰는 데 노력한 스님은 불교의 중심 가르침인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멈추고 깊이 보라’는 말로 표현하고, ‘마음챙김(mindfulness)’을 처음으로 퍼트렸다. 자두마을 등 그가 세운 공동체에서 따르도록 한 가르침 역시 ‘열린 마음, 견해에 집착하지 않기, 자유로운 사고, 고통을 알아차림, 단순하고 건강한 삶, 화 다스리기, 이 순간 행복하기, 공동체와 의사소통, 진실하고 사랑이 가득한 말하기, 승가공동체의 보호, 바른 생계활동, 생명에 대한 경의, 관용, 바른 행위’ 등, 누구나 알아듣기 쉽고 실천하기 쉬운 덕목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 가르침의 기원이 되는 스님의 일화들이 가득하다. 네 살 때 어머니가 장에서 사다 준 과자를 30분에 걸쳐서 아껴 먹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스님은 말한다. “어린 시절에 내가 과자를 먹듯이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즐기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이 어린 시절에 먹던 과자를 지금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안다. 그것이 여전히 당신 가슴속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모든 게 거기 있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면 그게 보일 것이다.”

또 화장실이 없어 풀숲에서 바나나 잎으로 휴지를 대신해야 했던 사미승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청소할 변소가 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자기에게 행복할 조건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누구나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 하나 더, 베트남 전쟁 당시 폐허가 된 마을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던 스님은 같은 마을을 세 번이나 복구한 뒤 다시 공격을 받자, 다시 복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 번째라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언제고 전쟁은 끝나게 돼 있어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행동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오직 친절한 마음과 연민하는 마음으로써 스스로 빛난 틱낫한 스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진리와 깨달음’은 가장 단순한 데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인생을 조정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들이 우리의 인생을 조정한다. 조용하게 나를 움직이는 삶의 원칙들은 무엇인가, 스님의 삶이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법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

“나는 이르렀다, 나는 집에 있다.” 이 말은 자두마을의 법인(法印, 가르침) 중 하나이다. 스님은 ‘나의 수행의 모든 것이 이 말에 담겨 있다. 붓다의 가르침을 내가 어떻게 이해했는지 표현하고, 이는 또 내 수행의 본질이다.’라고 말한다. 망명인으로 유배 생활을 시작하던 해, 스님은 힘든 나날을 보냈다. 불교 수행에 대하여 근사한 강의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으로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밤중에 깨어 일어났는데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만큼 힘들었다. 그러다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가톨릭 사제, 개신교 목사, 랍비, 이맘 등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구로 사귀며 매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지금 여기를 살면서 매일의 생활 속에 숨어 있는 놀라움을 접해 보려고 노력했다. ‘매 순간 마음챙기기’, 스님이 살아남은 건 그 수련 덕분이었다.

이 책에서 스님은 호흡, 걷기, 앉기, 듣기, 차, 게송, 껴안기 명상 등 다양한 마음챙김 명상을 소개한다. 마음챙김은 현재 순간에 있으면서 모든 것, 우리 안팎에 있는 온갖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긍정적인 것은 배양하고 부정적인 것을 인식하고 껴안고 바꿔 놓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마음챙김 수련이 무엇을 얻거나 무엇을 이루려는 게 아님을 스님은 강조한다. 수련 자체가 큰 기쁨이고 우리가 찾는 평화인 것이다. 수련은 곧 목적(destination)이며, 이는 우리 모두 현재 순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의 진짜 고향집은 지금 이 순간이다. 무슨 일이든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진짜 고향은 분별이 없고 미움이 없는 곳이다. 우리가 더 무엇을 추구하지 않고, 더 무엇을 갈망하지 않고, 더 무엇을 후회하지 않는 곳이다. 마음챙김 에너지를 가지고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로 돌아올 때 우리의 진짜 고향집을 지금 이 순간에 마련할 수 있다. 당신의 진짜 고향집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서 창조하는 무엇이다. 자기 몸과 평화로이 지내고, 자기 몸을 돌보고, 자기 몸의 긴장을 풀어줄 때, 그때 우리 몸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집이 된다. 자기의 감정들을 보살필 줄 알 때, 기쁨과 행복을 낳고 아픈 감정들을 다룰 줄 알 때, 그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한 고향집을 세우고 회복할 수 있다.” -틱낫한


우리 내면의 영혼을 깨우는
틱낫한 스님의 북소리!

옛날 베트남에서는 벚나무 축제를 벌였다. 간혹 날씨가 추워서 예측한 날에 벚꽃이 활짝 피지 않으면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에서 북을 두드리며 나무에게 기운차려 꽃을 피우라고 격려해 주었다. 94년간의 발걸음,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은 우리 스스로 가슴속에서 깨어나도록 응원하는 따듯한 북소리이다. 스님의 이 책에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북소리를 몇 가지 소개한다.

내 삶의 일분일초가 기적이다 : 설거지가 즐겁지 않다는 생각은 그것을 기꺼이 하려고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일단 싱크대 앞에 서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더운 물에 손을 담그면 설거지가 정말 즐거운 일로 된다. 스님은 접시와 물과 손의 움직임에 온전히 깨어 있으면서 접시 하나하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만약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다른 일을 하려고 서두른다면, 그릇 닦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일분일초가 하나의 기적임을 기억하라. 접시들이 거기 있고 내가 그것들을 닦는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평화이다 : 젊고 창의적인 구글 직원들을 위한 스님의 가르침이다. 성공을 위해 어떻게든 ‘넘버원’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쏟아 부으며 자신의 몸, 느낌,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를 돌볼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어쩌다 시간이 있어도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서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스님은 구글의 젊은이들과 앉기 명상, 걷기 명상, 마음 챙겨 식사하기, 온전한 휴식까지 함께했다. 고요와 정적을 즐기는 동안 이들은 시간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시간은 평화임을 알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인생을 깊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사랑에 대한 이해 : 스님은 두리안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두리안을 스님에게 선물한다면 스님은 어떻게 할까.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물러날 것이라고 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내가 두리안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은 이해 없는 사랑이다. 참 사랑은 깊고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호흡을 놓치지 마라 : 스님은 한 이탈리아 시골 농부가 낫질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일이 있다. 농부는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낫질을 했는데 그 움직임이 호흡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낫질을 호흡에 맞추고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챙겨 서두르지 않으면 힘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흡에 집중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다.

몸을 돌보라 : 많은 사람이 자기 몸한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지나친 일로 자기 몸을 혹사하고 자기 몸을 잊어버린다. 컴퓨터로 일하는 두 시간 동안 자기한테 몸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우리 몸은 외롭고 긴장하고 그래서 늘 아프다. 당신 마음이 당신 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당신은 실제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 몸과 함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참으로 살아 있는 거다.

불안에게 말 거는 법 : 현대인은 외로움, 아픔, 절망을 덮으려고 무언가를 찾는다. 이메일을 체크하고, 신문을 읽고, 뉴스를 듣고 내면의 외로움과 고통을 잊기 위해 뭐든지 한다. 우리 몸은 쉴 줄 모르고 마음도 쉴 줄 모르고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 쉴 줄 모르는 불안 에너지가 드러날 때 스님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안절부절못하는 불안아, 네가 거기 있는 걸 내가 안다. 내가 널 돌봐주마.” 그러고는 마음챙김으로 숨 쉬며 우리 마음을 몸으로 데려온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에 접속되고 내면의 느낌들을 돌봐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 스님은 말한다. “당신이 나를 ‘존경하는 낫한’이라고 부를 때 내가 ‘예’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겁탈당한 소녀 이름을 부를 때도 내가 ‘예’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해적의 이름을 부를 때도 내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대포와 기관총 만드는 사람들 이름을 불러도 내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에 따라서 나는 소녀일 수도 있고 해적일 수도 무기를 파는 상인이 될 수도 있다. 그 모두가 ‘나’라는 진실을 깨치면 내 속의 증오는 사라지고 전쟁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서,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다.”

과거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 : 베트남 전쟁 퇴역 군인들을 위한 수련 모임에서 스님은 다섯 아이를 죽인 퇴역군인을 만났다. 스님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다섯 아이를 죽인 건 사실이오.” 다시 또 말했다. “하지만 오늘 당신이 다섯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말을 들은 뒤 퇴역 군인은 아이들 돕는 일에 남은 삶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들어감으로써 당신은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 다른 무엇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한 늙은 수도승의 소박한 뜻’
틱낫한 스님의 묘비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

세속 나이 아흔을 넘긴 틱낫한 스님은 지난해 10월 고향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했다. 제자에게 쓴 편지에서 스님은 “이제 내 생의 수레바퀴가 멈추어 간다. 남은 나날을 스승과 제자들과 함께 보낼 때가 왔다.”고 밝혔다. ‘한 늙은 수도승의 소박한 뜻’이었다. 열여섯 살에 출가한 투 히에우 사원에 머물고 있는 스님은 짐작컨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르침이 되고 있지 않을까. 스님은 이 책에서 묘비에 대한 뜻을 제자에게 밝히면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일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따듯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스승이 죽으면 재를 묻은 탑을 쌓겠다는 제자, ‘사랑하는 스승 여기 잠들다’라는 묘비를 세우겠다는 제자에게 스님은 타이른다. 나를 위해 절 땅을 낭비하지 말며, 재는 나무들이 자라는 데 뿌려주라고. 그래도 묘비를 쓰겠다면 “나는 여기 있지 않다. 당신이 숨 쉬고 걷는 데서 나를 볼 수 있으리라.”고 쓰라고 청한다.

인간은 파도이면서 바다이며, 한 그루 나무이면서 이파리이다. 파도가 사그라져도 바다는 그대로이고, 이파리 한 잎 떨어져도 나무는 꿋꿋하다. 구름은 비가 되고 눈이 될 뿐, 구름이 죽는 건 불가능하다. 시작도 끝도 없다. 인간의 몸은 해체되지만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스님은 평생 “일상에서 연속되는 나를 보는 수련”을 해왔다. 자비로이 걷는 누군가를 볼 때 그가 스님의 연장延長인 것을 알아본다. 이미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미래 세대들 안에서, 스님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날은 우리가 다른 모양들로 이어지는 날이다. 이 진실에 닿는 것이 깊은 수행이고, 그것이 우리를 가장 깊은 두려움에서 건져 내어 안심으로 데려간다. 니르바나는 소멸消滅, 태어남과 죽음, 있음과 없음, 옴과 감에 대한 개념을 포함하여 온갖 개념과 관념들의 소멸을 의미한다. 삶의 궁극 차원, 서늘하고 평화롭고 기쁜 상태가 니르바나다. 죽어서 얻게 되는 상태가 아니다. 바로 지금 당신은 마음 챙겨 숨 쉬기, 걷기, 차 마시기로 니르바나에 들 수 있다.” -틱낫한

책속으로 위로

과자 조금 베어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과자 조금 베어 물고 발치에 앉은 개를 쓰다듬고, 그랬다. 그냥 하늘과 땅과 대숲과 고양이, 개, 꽃들과 더불어 거기 있는 모든 것들을 즐겼다. 그렇게 과자 하나 먹으면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걱정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를 염려하지 않았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과자, 개, 대숲, 고양이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과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 있었다. (19쪽)

내가 그 산을 오른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그 작은 옹달샘과 거기에서 떨어지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물소리는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어쩌면 당신도 바위, 나무, 별 또는 아름다운 일몰같은 당신의 은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영적 체험이었다. 그 뒤로 나는 차츰 고요해지고 조용해졌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른 누구와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내 가슴에 그냥 담아 두고 싶었다. 스님 되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굳어졌다. 이윽고 내 나이 열여섯이 되자 부모님은 후에 가까운 투 히에우 절로 들어가서 사미승 될 것을 허락하셨다. (28쪽)

알아차림의 햇빛 안에서 하는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신성하다. 이 빛 안에서는 성聖과 속俗 사이에 경계가 없다. 설거지를 그렇게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나는 매순간을 충실히 살고 그래서 행복하다. 설거지는 그 자체가 수단이면서 목적이다. 우리는 그릇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만 설거지를 하는 게 아니다. 설거지 자체를 위해서, 그릇 닦는 순간을 충실히 살고, 자기 삶에 진실히 접속하기 위해서, 그래서도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43쪽)

위험은 자주 안에서 온다. 미리 막을 수 없는 돌발 사태가 벌어져도 침착하게 깨어 있으면 잠재된 위험이나 치명적인 사태를 조용히 가라앉힐 수 있다. (71쪽)

과연 스물네 시간 안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평생 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 많은 일을 어떻게 스물네 시간 안에 한단 말인가?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평화롭지 못하면 나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이었다. 위험 한복판에서 평화롭지 못하면 평상시 누리는 평화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곤경에 처하여 평화롭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를 끝내 모를 것이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날 밤의 앉기 명상과 호흡 명상과 마 음 챙겨 걷던 걸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77쪽)

사람들이 어떤 관념이나 관점을 가지고서 당신을 상자 안에 넣으려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의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문제는 현실이다. 그것을 서술하는 언어가 아니다. 이름이란 관습적인 호칭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가 아니다. 우리는 실재의 참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89쪽)

나를 잉태하기 전에 우리 어머니는 다른 아이를 뱃속에 가지셨다. 그런데 뭐가 잘못돼서 유산을 하고 아이는 태어나지 못했다. 어려서 나는 자주 묻곤 했다. 그게 형이었던가? 아니면 나였던가? 그때 태어나려고 했던 게 누구였던가? 한 아이가 유산되었으면 그가 나타날 조건이 충분하게 갖추어지지 않았던 것이고 그래서 더 좋은 조건을 기다리기 위해 뒤로 물러서기로 아이가 결심한 것이다. “뒤로 숨는 게 좋겠어요, 사랑하는 엄마. 금방 다시 올게요.” 우리는 그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머니의 잃어버린 아이가 우리 형이었던가? 아니면, 내가 나오기로 했다가 “아직 때가 아니군.” 하고서 뒤로 물러선 건지 모른다. (144쪽)

자두마을에서는 형제자매들이 자기 컴퓨터에 마음 챙김 종소리를 입력해 둔다. 매시간 15분마다 종이 울리면 하던 일과 생각을 멈추고 들숨과 날숨으로, 자기 몸으로 돌아간다. 자기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최소 세 번 마음 챙겨 숨 쉬고 일을 계속하기 전에 미소 짓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주 네 몸으로 돌아와 네 몸을 돌보라고 자신에게 일러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자기 몸한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지나친 일로 자기 몸을 혹사하고 자기 몸을 잊어버린다. 컴퓨터로 일하는 두 시간 동안 자기한테 몸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우리 몸은 외롭고 긴장하고 그래서 늘 아프다. 당신 마음이 당신 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당신은 실제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151쪽)

수년 전, 뉴욕시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사가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평화나 기쁨을 조금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 참자기로 존재하지 못했고 그것이 그의 운전 방식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고들 있다. 일을 급히 서두르지만 자기가 지금 하는 일과 하나 되지 못하고 그래서 평화롭지 않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다른 데 있다. 과거나 미래로 가 있든지 아니면 분노, 좌절, 희망 또는 꿈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진짜로 살지 않는다. 옹글게 현존하지 않는다. 마치 유령 같다. 예쁜 아이가 다가와서 웃어 줄 때 그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가? 아니면 생명과 서로를 만날 그 값진 기회를 잃고 마는가? 그렇다면 정말 가련한 일이다. (152쪽)

하루는 파리에서 상추를 나무라지 않는 것에 대하여 대중강연을 했다. 강연 마치고 혼자 걷기 명상을 하는데 어느 빌딩 모서리를 돌다가 여덟 살 된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엄마, 나한테 물주는 거 잊지 마세요. 나는 엄마 상추예요.” 그 아이가 내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그러자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얘야, 나도 네 상추야. 그러니 너도 나한테 물주는 거 잊지 마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수행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178쪽)

길을 걸을 때 우리는 혼자 걷는 게 아니다. 우리 부모와 조상들 이 우리와 함께 걷는다. 그들이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 현존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치유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모든 발걸음이 우리 부모와 조상들에게도 같은 치유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마음 챙겨 옮기는 모든 발걸음에 우리와 우리 안에 있는 동물, 식물, 광물 선조들을 포함하여 모든 조상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우리는 우리만을 위해서 걷는 게 아니다. 우리가 걸을 때 우리는 가족과 전 세계를 위해서 걷는다. (190쪽)

부모와 소수 자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발명품이다. 그 작은 가정에서 숨 쉴 곳이 없을 때가 있다. 부모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온 가족이 피해를 입는다. 집 안 공기가 무거워지고 어디 도망갈 곳이 없다. 아이는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걸고 혼자 있으려 해보지만 무거운 공기가 욕실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와서 여전히 도망칠 데가 없다. 그래서 아이는 많은 고통의 씨를 안고 자라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 씨들을 자기 아이들에게 그대로 옮겨 심어 준다. 우리 모두 근본적으로 어디에 속해 있어 그 안에서 환영받고 안심하며 살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족이나 가정을 그것이 가능한 장소로 바꿔놓을 수 있다. (194쪽)

마음 챙겨 걷기는 우리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무엇이다. 발걸음마다가 우리 가슴과 머리에 영양분을 준다. 우리에게는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들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 걷기 명상은 자기 자신한테로 돌아오는 길이다. 우리는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시간에 돌아올 수 있다. 달에 갔다가 돌아오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진짜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호흡 한 번으로 충분하다. (198쪽)

당신 생애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들은 이제 당신 등 뒤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니면 당신 생애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아직 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기다려온 바로 그 순간이다. 붓다께서 이르셨다. “지금 이 순간을 네 생애의 더없이 경이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203쪽)

언론사 서평 위로
내용을 입력하세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