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째 달마 그리는 소공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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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째 달마 그리는 소공거사
  • 남동화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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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그림은 아무래도 선공부를 한 사람이 제격일 것입니다

"세상 을 왜 그렇게 살아요. 하룻밤 자고 가면 되지 뭘 그렇게 바쁘게 서두는 거요."

몇 번의 통화 끝에 겨우 취재 허락을 받고 출발하기 전, 늘 바쁜 일정 에 쫓기는 일상이다 보니 자연 취재를 마치고 당일 돌아와야 한다는 형편을 얘기하자 소공(簫 ,본명 이명우 73세) 거사는 한마디 한다. 글쎄 왜 이렇게 일사에 밀려 살아야 하는 걸까.

농가의 추수도 거의 끝난 만추의 산야는 고즈넉하기조차 하다. 전북 부안의 넓은 평야를 지나 한참을 숨어든 전향원(篆香園). ‘향이 피어오르는 집’이라는 뜻으로 소공 거사는 당호(堂號)를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열려진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꽤 넓어 보이는 뜰에는 손 가는 대로 가꾼 듯한 화초와 분재 그리고 작은 나무지만 빨간 감이 소담스럽게 매달려 있는 감나무 몇 그루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석불과 탑, 포대화상이 인상적이다.

큰아들(선혜 스님, 법왕사)과 큰딸(동명스님, 선방수좌)은 출가를 했고 작은아들과 작은딸은 결혼해 서울 가 살고 있는지라 전향원에는 내외가 살고 있다. 집 한 켠에 마련된 법당에는 매일 새벽 4시에 예불을 올리며 한두 시간씩 참선을 하고 있다.

"일흔이 넘고 보니 인생이 눈 깜빡할 사이처럼 후딱 가버린 것같이 허망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지금까지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젋었을 때 선공부를 좀 한 덕택이지요. 다음생에 태어날 때는 훤출한 비구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그때도 이렇게 그림은 한 장씩 그릴 수 있으면 좋겠지요."

열여덟에 금산사로 출가했던 소공 거사는 당시 대강백이었던 포광 스님께 경전 공부를 했다. 사교까지 공부하고 대교는 독학을 했다. 경전을 공부하는 데에는 유교의 대학자이셨던 조부로 부터 유년기에 공부한 한문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해인사·통도사·범어사 등 선방을 두루 다니며 선공부를 했던 소공은 한때 정혜사에 주석하고 계신 만공 스님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를 받아 참구해 들어갔다. 그런데 상기(上氣)가 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벌겋게 타오르는 듯한 얼굴은 아무리 찬물로 씻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훨훨 타오르는 아궁이에 얼굴을 갖다대고 있으면 시원할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상기라 내려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구참스님들은 화두를 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들려진 화두가 아무리 놓으려고 해도 놓아지지가 않았다. 또 어떤 분은 신심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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