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우번대 법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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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우번대 법종 스님
  • 이광이
  • 승인 2019.02.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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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도 지나고 나면 약이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지.”
사진=최배문

실상사에서 아침공양 마치고 나오는데 비가 든다. 비는 운무를 동반하여 보광전의 지붕을 덮고, 바리때를 엎어놓은 탑의 복발(覆鉢)까지 내려왔다. 날은 흐려도, 겨울 산사는 맑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이내 눈으로 바뀌어 싸락싸락 내린다.

“여기가 이 정도면 지리산 못 넘어 갈 건데 통 제할 거야”

스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차를 몰아 성삼재로 향했다. 지리산을 북에서 남으로 넘는 길, 싸리 눈은 함박눈이 되어 펑펑 퍼붓는다. 달궁, 정령치 지나 비탈이 급한 곳에서 차는 더 오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헛바퀴 돈다. 저 앞에 관광버스도, 용용한 SUV도 꿈틀꿈틀 헤매고 있다. 우리는 후퇴했다. 달궁에 숙소를 정하고 집주인께 통사정하여 스노우 체인을 단 트럭을 얻어 타고 올 라갔다. 오도 가도 못한 차량들을 스치면서 올라 가는 기분, 대리운전 불러 가는데 음주단속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것을 고소해 하는 나의 고약한 심보를 지리산은 고쳐주겠지.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향해 걷는다. 무넹기에서 화엄사쪽 하산 길로 들어섰다.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한 20여 분 내려갔을까, 거기서 등산객 둘을 만났다. 그런데 우번대가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올라가야 한다. 등에 진땀을 흘리며 원래 자리로 돌 아왔다. 그들이 가르쳐준 대로 드디어 우번대 찾아가는 길, 푸른 산죽 위에 눈이 쌓인 오솔길을 따 라간다. 우리는 타인들로부터 두 번의 도움을 얻어 제 길에 들어선 것이다. 눈길에 막혀 하루를 허송하고 보냈거나, 저 화엄사로 끝없이 내려가고 말았을 것을, 어떤 인연의 한 자락이 보살펴 주셨으리라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눈길에 어찌 오셨소?” 스님이 눈이 동그래져 묻는다. 산에 들어 거의 두 시간을 헤맨 끝에, 돌담에 초록색 양철 ‘맞배 지붕’을 보았을 때, 아 여기로구나, 여기가 진짜 토굴이구나, 하고 마당을 돌아 나왔을 때, 스님이 어인 일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우번암(牛飜庵)’이 라고 작은 널빤지에 흘려 쓴 편액 하나 처마에 걸려 있다. 작고 좁고 낮은 법당, 연등이 걸린 법당이 냉방이다. 문수보살 전에 시주하고 삼배했다. 토굴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여 말린 소채라도 좀 사가려고 다짐하였건만, 눈길에 서둘다 잊어버렸다. 스님이 오미자차 두 잔 내어준다.

“여수 신도들이 김장했다고 오늘 온다 했는데, 눈이 하도 내려 천은사에서 차 돌려 내려갔어. 김치는 구례 떡집에다 맡겨놓고 간다고 전화 왔었는데, 이 눈길을 헤치고 용케도 찾아왔네?” 그래서 두 번의 도움을 얻어 온 사연을 얘기했더니, “연이 닿은 거지. 보살을 만난 거라”한다.

법종스님, 70년대 백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화엄사, 범어사에 살다가 여기 우번암에 들어온 지 40년이다. 세납이 곧 여든이니, 반생을 지리산에서 살았다. 성삼재 찻길이 올림픽 앞두고 1985년에 개설되었으니까, 산에 길이 없던 때부터 산 셈 이다. 스님 젊을 때는 산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천은사는 마실 다녀오는 정도이고, 화엄사도 1시간 이면 내려가고, 반야봉 묘향대까지 그야말로 ‘축지법’을 쓰면서 지리산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해발 1200m의 고도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여기가 극락이던가 하고 도취하던 시간은 그러나 길 수 없다. 사람이 몇 날 며칠을 구름을 품고 이슬만 먹고는 살 수 없는 일이다. 또 천하명당 기도처라는 곳이 보통사람은 기운에 눌려 버텨내기 어렵다고 하니. 법종스님 이전에 살던 스님들이 한 철을 넘기지 못하고 떠난 것이 다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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