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길손 그리고 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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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길손 그리고 도반
  • 김택근
  • 승인 2019.02.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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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에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며 탁발순례하는 무리, 이름하여 생명평화탁발순례단. 그들과 길을 나섰다. 어림 15년 전의 일이다. 도법스님의 뒤를 밟으며 순례단원들은 모든 마을을 찾아가 빌어먹기로 했다. 밥 주면 밥 먹고, 욕하면 욕을 먹고, 때리면 맞기로 했다. 순례단은 평생 길에 머물렀던 부처님의 흉내를 내기로 했다. 길에서 이 시대 생명평화의 길을 찾는 여정이었다. 나는 드문드문 합류했다. 어느 날 보니 길 위에 있음이, 길을 걸음이 편해졌다. 길을 걸으면 숱한 생각이 돋아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뒤엉킨 생각들이 명료해졌다. 그 때의 소회를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짐승들은 달리고,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지렁이는 기고, 인간은 걸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들만이 걷지 않는다. 걷기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 버렸다.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온존하게 하는 몸짓이다. 자신을 버려 자신을 돌아봄이다. 걸음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다. 걸음의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동작을 면밀하게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 보면 안다. ‘걸을 때는 걷는 것을 알라’는 가르침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걸음에 온전히 나를 맡기면 걸음자체가 인생이요 세상이다. 그렇게 걸음 자체에 나를 맡기면 비로소 자신이 보인다.’ (졸저 「사람의길」)

둘러보면 걷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걷기 열풍이 불었고, 누구는 걷기혁명이라는 용어를 구사하며 걷는 행위를 예찬하고 있다. 걷는 이들은 걸어서 행복하다고들 말한다. 걷기 열풍은 물론 내 몸 챙기기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변화는 육체에만 깃들지 않았다. 걷다보니 삶의 기름기도 빠지기 시작했다. 포만감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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