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에세이] 나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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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에세이] 나의 어린 시절
  • 강우방
  • 승인 2019.02.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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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자전적 에세이 - 나의 삶, 나의 학문 2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와 형제들. 12남매 였지만, 전쟁통에 5남매만 남았다.

만물이 부처 아닌 것이 없으니,

만물이 보주 아닌 것이 없구나..

그러므로 부처는 보주라!

내가 기적적으로 발견한 침묵의 조형언어로 쓴 조형예술작품에서 충분히 증명해서 설명해왔다. 부처님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존재하여 왔다. 과거에도 갠지스강가의 모래알만큼, 무량한 부처님이 계셨다고 싯다르타 태자는 말씀하시지 않았더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암울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는 고구려 수도 국내성 가까운 곳에서 1941년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를 낳기 바로 한 해 전 아기를 지웠는데 그 이듬해 기어코 세상에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로부터 먼 훗날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조형들을 풀어내면서 세계에서 처 음으로 ‘조형언어의 존재’를 알아냈고 그 ‘조형언 어의 문법’을 찾아내어, 마침내 세계의 조형예술 작품, 인류가 창조한 일체의 조형예술작품을 완벽 히 읽어내는 쾌거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고구 려 땅의 대모지신大母地神의 도움이 없이 어찌 이런 역사적 문제가 풀릴 수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고구려 벽화에서 어찌 ‘옴마니파드메훔’ 주문呪文 을 해독했으며 그 주문이 조형화된 고려청자를 어 찌 알아 볼 수 있었겠는가. 이상한 일은 ‘옴마니파 드메훔’을 해독했다고 스님들께 말해도 무슨 뜻인 지 묻는 분이 한 분도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해방이 되자 우리 가족은 만주를 떠나기로 했다. 1945년 가을, 아버지는 하얀 새 운동화를 사주셨 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새 신발을 신고 즐거운 기분으로 해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팔짝 팔짝 뛰 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와 나는 걸어서 서울 로 향했다. 기억은 그 뿐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평양에서는 네 거리에서 무릎까지 긴 구두를 신고 교통을 정리하는 ‘로스케’ 소련군을 보기도 했다. 갖은 고생 끝에 서울에 도착했고 먼저 도착한 아 버지와 형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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