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관세음보살’ 외할머니와 우리 엄마
어느덧 짙은 녹음을 밀어내고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온 거리를 뒹구는 계절이 찾아왔다. 이 모든 계절이 내겐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관세음보살. 아주 오래전부터 관 세음보살을 생각하면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외할머니와 엄마가 떠오른다. 나의 ‘관세 음보살’이신 외할머니, 지금 이 시간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던 엄마다.
5살 즈음부터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네의 작은 암자로 매일같이 향했다. 계 단을 오르내리는 할머니는 항상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 불...” 하시며 노래같이 읊조리셨다. 그 염불소리를 들으며 내 유년 시절은 흘러갔다.
내 나이 18세 꽃다운 나이가 될 즈음 어느 화창한 5월 단옷날, 창포물에 머리 감 으시고 고운 옷 차려입고 절에 가신다던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시고 사랑하 시던 관세음보살님을 만나러 먼 여행길을 떠나셨다. 나의 영원한 관세음보살이신 할머니의 가르침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대로가 법문이었고 내 인생 후반의 목표가 된 계기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뜨거운 물을 하수도에 붓지 마 라,” “생명을 귀하게 생각해라,” “배고픈 사람 밥 한술 먹게 하라,” “보시를 잘해야 된 다.”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을 울리는 말은 “흘러가는 물도 떠서 주면 공이 된다”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을 내가 이해하는 데는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 인생 목표는 영등포의 ‘쪽방도우미봉사회’로 향한다. 쪽방도우미봉사회는 영 등포 쪽방촌에 계신 분들에게 매주 목요일 점심과 도시락을 나누는 봉사회다. 이 일 을 시작하며 독거노인과 장애인분들 그리고 쉴 곳조차 없는 노숙인들과 함께한 시 간들이 어느덧 30년도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다. 매주 목요일 도시락 반찬을 준비해서 배달을 다니고 어르신들의 말동무도 하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또 그렇게 목요일을 맞이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이지만 우리는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이곳에 마음을 두고 지냈다. 때로는 반찬거리가 없어서 새벽청과시장을 누비 면서 우거지를 얻어와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며 매주 도시락을 마련했다. 그렇게 이 어온 마음은 사람으로 이어졌다. 한두 사람씩 봉사자가 늘어났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의 관세음보살님들을 마주하면서 수많은 목요일을 보내었다.
봉사자들은 점차 더 늘었다. 드디어 2016년 6월, 영등포쪽방촌에 봉사회 가건 물을 짓게 됐다. 이제 쪽방도우미봉사회는 그 가건물 현장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500~800인 분의 국수를 삶아서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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