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에세이] 독각의 흐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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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에세이] 독각의 흐느낌
  • 강우방
  • 승인 2019.01.03 1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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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에도 아이들과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그랬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더욱 그랬다. 대학 마당의 거대한 마로니에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늘 담배를 피우며 혼자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서예는 동아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배웠지만 저녁에도 빈 방에서 혼자 쓰는 시간이 많았다.

사군자도 배웠다. 동시에 데생도 열심히 하며 광선이 빚어내는 오묘한 그림자에 매혹되었다. 유화는 혼자서 그렸다. 색 배합은 영문으로 된 책을 사서 배웠으나 그저 혼자서 마음대로 그렸다. 누가 시킨 적은 없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홀로 했다. 전국 각지를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독문학과를 다녔지만 그 당시 명강名講이라고 알려진 강의는 교실을 바꾸어가며 모조리 들었다. 물론 아는 친구는 없이 홀로 들었다. 학점을 따야 하므로 함께 다닌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미학美學강의를 부전공으로 40학점 취득했어도 고고인류학과의 교수는 받아들이지 않아 60년도에 입학했지만 28세에 학부 2학년으로 학사 편입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한 학기 만에 흥미를 잃고 중퇴했다. 그해에 결혼하고 미술사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미술사학이 무엇인지 알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박물관의 작품들이 좋아서였다.

12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님은 항상 애처로운 눈길을 구석에 앉아있는 막내에게 보내곤 하셨다. 부산 피난 시절에는 큰 방을 하나 썼는데 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칭병稱病하고 부산 큰 누님 집에 내려가 매일 빠지지 않고 영화를 보는 중에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대학교 때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나 홀로 선택하고 결정해야했겠다. 대학 진학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나마 고고인류학과 한 학기 다닌 인연으로 1968년 가을 간절히 소망했던 국립박물관 학예사가 되었다. 9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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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2021-03-30 20:18:31
좋은 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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