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조계종 포교사단 정분남 부산지역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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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조계종 포교사단 정분남 부산지역단장
  • 김성동
  • 승인 2018.08.3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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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자는 어떻게 리더가 되었나
사진 : 최배문

㈜불광미디어 부산경남지사가 8월에 첫 발걸음을 뗀다. 지사장인 진창호 전 홍법사 종무실장에게 요청했다. “부산경남지사를 출범하는 기념으로 부산지역에서 꾸준히 정진하며 전법하는 불자를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10여 명의 명단을 보내왔다. 이 명단 속 인물 중 여러 사람들이 공통으로 추천한 이가 바로 조계종 포교사단 정분남(61) 부산지역단장이다. 올 1월부터 조계종 포교사단 부산지역을 책임지게 되었는데, 이미 이곳 부산지역에서는 재가불자 사찰순례모임인 ‘삼보회三寶會’를 이끄는 이로 소문나 있었다. 정 단장의 신행 이력을 들춰보면 평범한 30대 초반에 불교로 귀의한 여성불자가 30년 후 어떻게 교계의 불교리더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한 여성불자의 성장기이면서, 현재 한국불교 속 재가불자의 바람직한 신행 모델인 셈이다.   

|    “네 마음대로 살아 보거라”

1990년 9월 어느 날. 해인사 백련암에서 3천 배를 마친 30대 초반의 여성이 성철 스님 앞에 섰다. 성철 스님은 이 여성에게 ‘자재천自在天’이란 법명을 주며 이렇게 툭 던지듯 말했다.

“네 맘대로 살아 보거라.” 

- 어떤가요? 정말 마음대로 살아가셨나요? 

“사람들이 말합니다. 법명을 맞게 받았다고.(웃음) 그때 법명 받았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법명대로 살진 못하죠. 점차 불교를 공부하면서 순간순간 많은 지침을 받고 있습니다.”

-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 해인정사에서 기초 교리부터 불교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어느 날 한글로 된 ‘108참회문’을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릅니다. 아마 그때부터 더욱 발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스님들께 법문도 많이 듣고, 참선도 했어요. 2001년 통도사 부산포교원 대광불교대학 1기로 입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포교사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법을 했죠.”  

- 지금까지 신행생활하면서 가장 지침이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금강경』 독송입니다. 2004년부터 천 일 동안 『금강경』을 매일 3독씩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했습니다. 회향하니까, 살면서 무엇을 하던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 기도할 때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집에서 하셨나요?

“아뇨. 절에서 했는데, 『금강경』 독송은 절 불사를 위해서 몇몇 분들과 함께 했어요. 처음 도반 몇 명이 함께했는데, 어떤 때는 저 혼자 목탁을 치며 했습니다. 명절에도 빠지지 않았어요. 회향 후 지금까지도 『금강경』을 놓지 않고 하루 3번 독송하고 있습니다.” 

- 많은 경전이 있는데, 어떻게 『금강경』 독송을 할 발심을 했죠?

“부처님께서 49년 설법에서 21년 동안 『금강경』을 설하셨습니다. 그것도 사다함, 아나함과를 얻으신 분들을 앞에 두고, 수보리 존자와 주고받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귀중한 경입니다. 경을 읽으면 마치 부처님과 제가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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