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찾아온 불교 바람 |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 간 이어진 하향 곡선이 아닙니다. 종교인구가 줄어들고, 불자 수가 감소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리고 있는 때입니다. 청년층의 종교 회피는 더욱 두드러진 모습입니다. 이제 종교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봄소식이 들려옵니다. 각 대학 불교학생회에 신입회원들이 적지 않게 들어왔다고 합니다. 많은 곳은 20여 명이 넘게 불교학생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진 불교학생회를 다시 재건하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한두 곳이 아닙니다. 이 봄꽃 같은 일들이 지방 곳곳에서 날아왔습니다. 2018년 봄날, 한국대학생불자들의 새로운 변화를 만나봤습니다. 01 고려대 서강대 불교연합법회 |
여기는 어디?
서울지부 연합법회의 현장!
“어느 학교에서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지난 4월 4일, 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와 서강대학교 불교학생회가 주최한 서울지부 연합법회 현장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날 연합법회에는 서울 시내 7곳의 대학교 불교학생회 법우 60여 명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번 법회는 고려대학교와 서강대학교 불교학생회가 서울지부 불교학생회 법우들을 초청한 특별법회로 서울 성북구 안암동 불교상담개발원에서 열렸다. 대학생 불자들의 불꽃같은 추진력이 녹아있는 법회의 현장, 에너지 넘치는 대학생 불자들의 신심 샘솟는 연합법회가 펼쳐졌다.
| 이정도 규모의 연합법회는 없었다
수요일 저녁 여섯 시 반, 가슴 설레는 시간은 지금부터다. 법회를 주최한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불교학생회 법우들부터 가톨릭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동국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 불교학생회 법우들이 하나둘 불교상담개발원으로 입장했다. 멀게는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법우들이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법회장으로 들어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법회에 함께 하려고 몸살 기운이 있는 몸을 끌고 온 이도 있었고, 아직 한국말이 어색한 외국인 법우들도 다수였다. 사회를 맡은 서강대 지회부회장 김동현(25, 종교학 17) 씨가 의식을 집전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연합법회에 오신 법우님들, 반갑습니다. 고려대–서강대 서울지부 연합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법사스님은 효록 스님(상담심리학 박사, 무우수심리상담연구소)이시고, 강의 제목은 ‘세포는 답을 알고 있다’입니다. 삼귀의로 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근래 이정도 규모의 대학 연합법회는 없었다. 연합법회를 추진한 홍사훈(25, 고려대 정치외교 13) 씨는 법회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불교상담개발원이 장소와 법사스님을 초빙해주어서 서울지회 법우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 본격적인 스님의 법문 시간이 이어졌다.
| 돈이 안 드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
“돈이 안 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킥복싱? 땀이 나고 스트레스가 풀리죠. 음악 듣기? 아주 좋아요. 108배? FM이죠! 그런데 여러분, 돈이 안 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부작용이 없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은 저와 그것을 함께 해볼 거예요. 스트레스를 해독하는 탁월한 명상법은 이틀이 걸립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이죠? 지금부터 저와 두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같이 해보겠습니다.”
효록 스님은 돈이 들지 않고, 부작용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고 운을 띄워 순식간에 좌중을 사로잡았다.
스님은 1980년대 후반 미국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 페니 베이커의 자가면역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이야기로 스트레스 해소법 강의를 이어갔다. 스트레스가 극도에 다 달으면 인체의 자가면역세포가 건강한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데, 그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의 감정,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급비밀 등을 종이에 써서 찢어버리기만 해도 면역세포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여러분 앞에 A4 용지를 한 장씩 드릴게요.”
스님은 이 흰 종이에 자기만의 비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의 감정을 적어보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보여줄 필요도 없다. 자기만 볼 수 있는 것이니 사건이 아닌, 당시 억눌렸던 감정을 털어내길 주문했다. 참가자들은 자기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당시에 느꼈던 마음들을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 타오르는 불꽃에 느끼는 카타르시스
“턱의 힘을 빼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으세요. 코로 호흡할 때 부교감 신경이 작용합니다. 부교감 신경이 활동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1:2로 호흡하는데 신경 써봅니다.”
종이를 긁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효록 스님은 들숨과 날숨의 비율이 1:2인 이유를 나지막이 설명했다. 숨을 들이쉴 땐 허파에 산소가 들어오고 숨을 내뱉을 때 혈액에 산소가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 스님은 이를 ‘치유를 위한 호흡’이라 했다. 이제 A4용지에 적은 일급비밀을 두 번 세 번 꾹꾹 눌러 접어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다음은 큰 원으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중심에는 뒤집어진 기왓장이 있다. 이제 스트레스가 적힌 종이를 태울 차례. 스님의 선창으로 소전진언을 독송하며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옴 비로기제 사바하, 옴 비로기제 사바하…” 한 명씩 나와 자기가 쓴 종이를 불 속에 던지고, 모든 도반들의 종이가 재가 될 때까지 참가자들은 진언을 함께 독송했다.
화르르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돌아서니 한결 개운한 얼굴이다. 기왓장에 놓인 재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앉은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소감을 전하자 폭소가 터지고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과제에 치여 여유 없이 살았는데, 힐링 되는 기분이에요. 아무래도 부처님은 최초의 심리치료사이지 않았을까요?” “스님, 저는 집에서도 해보고 싶은데요, 저 기와를 살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다른 사람과 함께 비밀을 태우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어요.” “제 감정을 제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내가 묻어놓은 비밀이 많더라고요. 피하고 묻어두려 했던 기억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감정을 따라 글 쓰는 게 정말 낯설었지만, 어려운 감정을 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 현실적인 꿀팁을 전수하마!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도 쉴 틈이 없었다. 어떤 것이든 궁금했던 것을 스님에게 직접 물어보는 시간. 한 법우는 최근의 고민을 상담했다.
“제가 과외 지도를 하는데 학생의 엄마가 너무 자주 연락을 해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심장이 뛰어요. 어떡하죠?”
“엄마의 불안 때문에 연락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그 불안을 내가 삼키면 내가 오염이 됩니다. 그 불안을 내가 먹지 말고 이해하고 위로해 넘겨주세요. 이렇게 말해보세요. …”
“스님, 저는 과거의 안 좋은 기억에 빠지는 경향이 있어요. 저를 힘들게 하는 기억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바다처럼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지금 여러분 마음은 폭포 같아요. 평화로운 바다처럼 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폭포보다 조금 느린 것은 강입니다. 폭포가 아닌 강물이 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
효록 스님은 여러 고민들에 대해 대학 학생상담실을 이용하라는 현실적인 팁을 전수하기도 했고, “어떤 경전으로 공부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는 『숫타니파타』부터 읽어보기를 권했다.
| 배고플 때 받은 밥상처럼 우리가 차리는 한 상
특별 연합법회는 훌륭하게 마무리됐다. 준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주 만에 준비된 법회였다. 법회를 기획한 고려대학교 홍사훈(25, 정치외교 13) 씨는 작년부터 중앙대학교와 연합법회를 했던 것이 이번 대규모 연합법회의 계기가 됐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작년에 저희 고려대 불교학생회는 조금 어려웠는데요, 활동 인원도 10명 정도였고 조금은 무기력했었어요. 어떻게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거든요. 불교학생회가 활발히 잘 되고 있는 학교와 함께 법회를 해보면 그 기운을 받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중앙대학교와 함께 연합법회를 하게 됐습니다.”
예상이 적중했다. 분위기는 점점 더 좋아졌다. 더불어 학교 밖 인맥도 넓어졌다. 중앙대 불교학생회와는 서로의 창립제도 함께 축하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졌다. 일 년 만에 힘을 되찾았다. 고려대 불교학생회는 작년의 침체에 콧방귀 뀌듯 올해 30여 명의 신입생을 받았다. 그동안 도움을 받았으니 회향해보자는 마음이 일었다.
“우리가 잘 될 때 돕는 거죠. 작년에 우리가 배고팠을 때 중앙대 친구들이 우리를 받아줬잖아요. 이번에는 우리가 풍족해졌으니 우리가 주축이 되어서 다른 학교 법우들을 초대해보자 했습니다. 그리고 불교상담개발원에서 장소도 빌려주시고 법사스님도 초청해주셨어요. 이분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런 규모로 연합법회를 만들긴 어려웠을 겁니다.”
홍 씨와 머리를 맞대어 함께 연합법회를 기획한 서강대학교 김동현(25, 종교학 17) 씨도 생각보다 더 많은 지회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힘들기보다 보람이 크다고 전했다.
“중앙대랑 고려대가 연합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저희도 함께 하고 싶어서 제안했다가 이렇게 서울지부 친구들을 초청하게 됐어요. 중앙대 친구들은 이번에 사정이 생겨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는 이렇게 만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 번 추진해보려 합니다.”
이날 법회는 아홉시를 훨씬 넘겨서야 끝이 났다.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이어진 연합법회는 지치지 않는 축제 같았다. 축제가 끝난 넓은 강의실에는 티끌 하나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