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 등불인가, 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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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통신] 등불인가, 섬인가
  • 김성동
  • 승인 2018.04.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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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45년, 머문 곳에 심한 가뭄이 와서 많은 비구들이 한꺼번에 걸식하기 어려웠다. 제자들을 인근 지역으로 흩어져 걸식하게 떠나보내고, 당신도 아난다와 함께 벨루와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심한 병을 앓았고, 이를 옆에서 지켜본 아난다는 부처님의 열반을 염려하며 말한다. “세존께서 계시지 않는 승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희를 가엾이 여겨 부디 이 땅에 오래오래 머물러주소서.” 늙은 시자의 눈물을 측은히 바라보던 부처님께서 말씀했다. “아난다, 내 나이 여든이다. 이제 내 삶도 거의 끝나가고 있구나. 여기저기 부서진 낡은 수레를 가죽끈으로 동여매 억지로 사용하듯, 여기저기 금이 간 상다리를 가죽끈으로 동여매 억지로 지탱하듯, 아난다, 내 몸도 그와 같구나.” 아난다가 눈물을 닦고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    아난다의 이 질문의 답변이 바로 한역경전의 유명한 문구로 알려진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이다. 경전은 이를 자세히 안내한다. “아난다.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라. 너 자신 밖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너 자신에게 전념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법을 떠나 다른 것에 매달리지 말라.”(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조계종 출판사) 그런데 초기경전에는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島)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대반열반경, 각묵 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    어떻게 다른가?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한역경전에는 ‘등불’과 ‘섬’ 두 가지 모두 번역해 읽고 있고, 초기경전에는 ‘섬’으로 쓰고 있다. 초기경전이 본격적으로 한국불교에 소개되기 전인 10여 년 전까지 대부분 ‘등불’로 사용했고, 최근 초기경전이 보편화되면서 ‘섬’으로 쓰고 있는 일이 잦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불교에는 이 두 가지 다 혼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역경전을 토대로 발전해온 대승불교 흐름 위에 빨리어 경전인 니까야의 한글 번역으로 확산된 초기불교가 겹쳐진 것이다. 고해苦海 속에서 스스로 의지할 ‘섬’이 되는 것, 무명 속에서 스스로 ‘등불’이 되는 것, 두 견해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문제는 이 ‘혼용’ 속에 있는 한국불교의 현재 상황들이다.

●    자등명 법등명. 이 명징한 구절은 불교의 특징을 압축해 보여줄 정도로 회자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지금도 그러한가? 아직은 이 문장이 익숙한 듯하다. 그럼 10년 후에도 그럴까? 초기불교를 공부하며, 니까야를 읽은 불자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는다”는 문장이 익숙해질 것이다. 최근 니까야를 읽고 있는 불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조계종단의 승려교육 교재와 신도교육 교재 모두 ‘등불’로 번역해서 사용한다. 니까야를 읽은 스님들과 불자들은 ‘섬’으로 번역해 읽는 것이 익숙하다. 이 둘의 충돌이 일어날 때 강사는 번역의 문제를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강사에 따라 또 다른 해석이 개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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