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잭프룻과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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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잭프룻과 닭
  • 심재관
  • 승인 2018.01.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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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프룻

잭프룻을 보면 그렇게 큰 열매가 어떻게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달려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큰 과일의 둘레는 웬만한 성인의 허리둘레만 하고 무게도 30~40킬로 정도에 이르니 가히 과일의 제왕이라고 할 만하다. 수박의 두 배쯤 되는 크기니까 아마도 나무에서 달리는 과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과일의 위용 때문에 이 열매는 예나 지금이나 인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식품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기원전 3세기경의 아소카 대왕이 석주 위에 칙령을 새겨 잭프룻의 재배를 권장했겠는가. 방글라데시에서 표방하는 국가과일이 이 과일이며 또한 인도 최남단 케랄라 주 정부가 선정한 공식 과일 역시 잭프룻이라는 것은 남아시아가 얼마나 이 열매를 사랑했는가를 보여준다. 지금도 여전히 인도 남부에서 망고와 바나나와 함께 3대 과일로 꼽을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웬만한 타밀나두의 가정에서 이 나무를 한두 그루 집안에 기르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경 속에서 이 나무는 파나사婆那娑 혹은 반나파半娜婆 등으로 불렀는데(學名 Artocarpus heterophyllus와 Artocarpus integrifolia 모두를 가리킨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panasa를 음사한 것이다. 후대에 이르러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바라밀수波羅蜜樹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위의 단어들이 와전되면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지금도 바라밀수는 잭프룻을 가리킨다. 

인도뿐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이 나무는 과일을 얻기 위한 것뿐 아니라 목재로도 널리 이용해왔다. 특히 인도의 경우 비나veena와 같은 전통 악기를 만드는데 이 나무를 애용했으며, 베트남이나 발리 지역은 왕궁이나 종교건축물을 짓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잭프룻 열매 하나 정도면 대여섯 명의 수행자가 식사를 할 만큼 양이 충분하며 그 맛도 특유의 단맛이 있다. 당나라 구법승 현장 스님이 인도를 여행할 때 아마도 지금의 아쌈 지역 일대에서 잭프룻을 재배하는 모습을 기록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수행자들도 이 맛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잭프룻은 나무의 잔가지보다 기둥 쪽에 많이 달리며 가끔씩 뿌리 쪽에서 위를 향해 열매가 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잭프룻은 특별히 더 달기 때문에 예로부터 귀하게 취급되었으며 왕이나 귀족에게 진상하던 종류였다.

이와 같은 유용성 때문에라도, 잭프룻은 불교인들의 성스러운 ‘여덟 가지 성물聖物들’(아슈타망갈라As.t.aman.gala)이 완전한 한 세트로 정착되기 전에 초기의 몇몇 성물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이 8대 성물은 쌍어雙魚, 매듭, 양산, 법륜, 물병, 연꽃, 깃발, 고둥 등이지만 마투라 등지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성물 조각들은 연꽃 대신 잭프룻으로 보이는 과일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고대 인도인들 또는 불교인들에게 이 과일이 인기 있었다는 것은 바르후트Bharhut 탑 속에 조각된 잭프룻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아마도 바루후트의 조각은 역사 속에 가장 일찍 조각된 잭푸룻의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가 특히 불교 승려 사회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그들의 승복에 대한 규정 때문이었다. 『마하박가Mahāvagga』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시 승려의 복장에 대해 여러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승려의 가사袈裟를 염색하는 일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한 과정까지 규정해 놓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승려의 옷이 더렵혀진 것을 전해 들은 후, 승려들의 옷을 몇 가지 색으로 제한하여 염색하여 입을 것과 그 염색 과정들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규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후대의 첨가된 이야기이겠지만, 어떤 색깔의 가사를 입어야 하는지, 염색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고, 건조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과 같은 일들을 규정해놓고 있다. 여기서 가사의 색깔은 밝은 황색, 갈황색, 어두운 황색, 청색, 주황색, 푸른색, 검은색 등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색깔로 규정한 것은 『마하박가』에 보이는 바와 같이 규정된 식물의 껍질과 뿌리, 몸통, 잎, 꽃, 과일 등으로 염색해야 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그 색깔들은 당대의 염색을 하는 데 사용되었던 식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색깔들을 의미한다.

현재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승려들의 가사를 염색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던 식물이 바로 잭프룻이다. 주로 잭프룻의 심재心材 부분에 해당하는 나무조각이나 톱밥을 물에 넣고 여러 번 끓여서 염색을 하는데, 여기에 강황과 같은 부재료를 섞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염료를 통해 황갈색의 옷감을 얻게 된다. 지역에 따라 염색과정에 소똥이나 진흙 등의 다른 재료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황색의 염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재료는 잭프룻의 나무조각이었다. 

이러한 잭프룻을 이용한 염색 전통은 동남아시아와 말레이반도의 불교전통이 존속했던 모든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캄보디아와 태국, 미얀마, 수마트라와 자바섬에 이르기까지 황색의 옷감 염색을 위해 잭프룻은 필수적인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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