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象象붓다 ] 금강스님과 김신일 작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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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象붓다 ] 금강스님과 김신일 작가 대담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박지연, 반지현)
  • 승인 2018.01.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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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자비가 깃든 미술이라면 무엇이든 불교미술이지요.”

실상사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화, 상도선원과 전등사를 장엄하고 있는 색다른 미술작품들을 보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김신일 작가의 작품은 전통사찰에서 친숙하게 접해온 불화나 불상과는 분명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문자조각으로 마음의 작용을 표현해나가는 그의 작품을 보면 과연 ‘불교미술’이라는 범주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1997년 백담사에 전국 최초의 사찰 미술관을 마련했으며, 지금도 미황사에 그림 그리러 찾아온 화가들을 몇 년째 꾸준히 뒷바라지 해오고 있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과 현대미술가 김신일 작가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마음의 작용을 형상화하다

김신일 작가의 작품관은 상당히 공空적이다. 작가의 대표작 중 ‘Invisible Masterpiece(보이지 않는 명작)’는 관람자들이 빈 벽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압인드로잉(나오지 않는 펜으로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을 활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관람자들이 갤러리에서 이쪽저쪽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명작을 경험하고 있는 모습은, 진정한 명작은 비어있음과 다름 아님을 나타내는 듯하다.

또 다른 작품 ‘Temporal Continuum Intuitively Known Élanvital Operates Emptiness(생의 약동으로 작동되는 일시적인 직관체-앙리 베르그송의 ‘지속’에 대한 정의)’(2010)에서 작가는 이미지를 담고 있는 영상을 직관의 반대로서의 ‘지속’에 대한 단어와 문장을 함유한 문자조각에 투사하여 영상과 조형물의 상호작용에 의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상이나 단편적인 이미지를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문자조각에 투사한다. 영상의 이미지는 문자조각에 의해 분할되어 다양한 빛들만 남게 되며, 이미지의 내용은 공空해진다.  

공空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김신일 작가. 그는 어떤 인연으로 이러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대학 시절부터 현대미술이 너무 서양의 색채만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던 중,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니 오히려 동양 철학의 가치가 와 닿더군요. 특히 불교가 종교를 뛰어넘어 2,500여 년간 사람의 ‘마음’을 연구해온 학문이라는 사실이 놀라워,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접하기 위해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뉴욕 원각사 동안거 기간에 잠시 머물러보기도 했고, 법문을 듣고 책을 읽으며 마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의 밑바탕인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을 화두로 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 작가의 ‘마음’에 대한 관심은 문자조각으로 발전되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에서 전시한 ‘문자조각에 영상을 투사한 설치작품’과 2015년 갤러리시몬 개인전에서의 ‘빛으로 문자를 만든 작품’ 등이 그것이다. 미술 작품에 문자의 모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김신일 작가는 “작품으로 마음의 작용을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흔히 마음을 표현한다고 하면 추상화와 같은 모습을 떠올리지만 그런 형상과는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어 문자의 형상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문자는 자기, 개인이 만든 형태가 아닌, 사회의 약속하에 이미 만들어진 형태이므로, 작업 과정에서 ‘나’를 덜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 작가는 작업을 해나가던 중 궁금했던 점을 금강 스님에게 질문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    생각과 생각 사이를 거닐다

김신일 작업을 해나가며 점차 ‘생각과 생각 사이’의 틈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고 여기는 순간 ‘나’가 개입되는 것처럼,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이미 분별을 하게 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생각이 일어난 순간과 다음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짧은 식견이지만,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을 색色, 그 사이를 공空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금강 스님  지금 말하는 생각과 생각사이를 불교에서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합니다. 육조 혜능 대사는 그 지점을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주無主라 표현했지요. 번뇌와 망상이 없는 상태를 무념, 고정된 상이 없는 상태를 무상, 어떠한 것에도 머무름이 없는 상태를 무주라 하지요. 수행은 바로 그 지점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고, 온전한 그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 선禪입니다. 작가님이 말한 ‘생각과 생각사이 ’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입니다.

김신일  그 지점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선택했던 문자에서도 벗어나, 더욱 온전한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금강 스님  지금 그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은 현재에 흐릅니다. 이미 지나온 꽃밭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무서운 폭포를 만날까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만나는 모든 것을 충분히 만나고 만끽합니다. 저는 그것을 ‘살아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매순간이 완성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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