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가 정상 외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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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가 정상 외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유권준
  • 승인 2017.11.30 11: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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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대통령, 한국 방문서 조계사 마중-사찰음식 배려로 큰 감명받아
사진=청와대

불교가 한국과 스리랑카의 정상외교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스리랑카 시리에나 대통령을 조계사에서 맞았다.

조계사가 양국정상의 첫 만남의 장소가 된 것은 긴 역사적 배경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 29일 저녁에는 채식주의자인 스리랑카 대통령을 위해 사찰음식으로 배려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와의 우의를 위해 불교문화가 가교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불교와 스리랑카 불교의 만남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3년 8월 20일 스리랑카의  다르마팔라(1864-1933)스님은 한국을 방문한다. 매일신보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7층 석탑 낙성식 장면, 동아일보 1930년 9월 15일. 사진=불교포커스

별항(別項)과 여(如)히 인도승(印度僧) 달마파라사(達摩婆羅師)가 21일(卄一日) 조선(朝鮮) 승려(僧侶)의 대표자(代表者)에게 향(向)하야 불골(佛骨)을 증진(贈進)함을 수답(酬答)하기 위(爲)하야 30본산(三十本山)의 주지(住持) 대표자(代表者) 일동(一同)은 금제(金製) 다기(茶器) 일대(一對)를 미술품(美術品) 제작장(製作場)에셔 제작(製作)하야 동사(同師)에게 증정(贈呈)하얏더라.  - 매일신보 1913. 08. 23

 

다르마팔라 스님

즉 다르마팔라 스님이 한국을 방문해 진신사리 1과를 기증하고, 이에 한국 불교의 대표자들은 금제 다기 한 세트를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다(1913년은 스리랑카가 독립하기 이전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시기라 인도승이라 표현).

당시 기증된 진신사리는 다르마팔라 스님이 호신불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으로 스님이 미국 하와이를 방문하고 귀국하던 길에 한국을 들렀을 때 극진히 그를 환대한 한국불교 대표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고 전해진다. (불교평론 47호 ‘스리랑카 : 구나난다, 올코트, 다르마팔라, 아리야라트네’ / 송위지 )

진신사리는 이후 1930년 7층석탑을 조성해 봉안됐다. 가로 15.8cm, 세로 11cm 크기의 장방형 은합속에 지름 8cm의 원형사리함속 3cm 크기의 수정에 봉안됐다.

진신사리는 2009년 조계사 창건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조성된 8각 10층석탑으로 옮겨 봉안됐다.

다르마 팔라는 근대 스리랑카의 불교부흥운동을 이끌었으며 제국주의의 불교탄압에 맞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던 스님이다.

1891년에는 인도로 불교 성지순례를 떠나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주변이 폐허로 방치된 것을 보고, 세계 불교도들에게 호소문을 보내 보드가야를 복구하는 데도 힘썼다. 인도정부에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주변 토지를 불하받으려 했으나 힌두교도들의 방해로 실패했다. 하지만, 다르마팔라 스님은 대각회를 설립해 인도의 불교성지보호와 복원에 총력을 다했다. 결국 다르마팔라 스님의 입적이후인 1949년 비하르 주 정부는 마하보디 사원의 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힌두교 사제들과 불교 스님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게 하여 공동관리하게 한다.

한국불교가 근대시기 세계 불교계와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이 다르마 팔라 스님의 한국방문이었다. 그리고 1백년이 지나 다시 양국 정상이 만나 서로의 우의를 다지고 교류협력에도 훌륭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됐다.

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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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2017-12-01 15:39:39
마하반야바라밀()
멋지십니다.
부처님 무한공덕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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