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상주 남장사 이백기경상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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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상주 남장사 이백기경상천도
  • 강호진
  • 승인 2017.11.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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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이 노든 달아!
사진 : 최배문

“이태백李太白. 이 전후만고前後萬古의 으리으리한 「화족華族」. 나는 이태백을 닮기도 해야 한다.” 

이 문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당나라 시인 이태백을 역사상 다시없을 고귀한 족속이라 상찬하며 “닮기”까지 하려 하는 이 사람 말이다. 툭하면 한시漢詩를 읊조리며 취향을 과시하려 드는 늙다리일까, 아니면 고전을 공부하다가 일찍 겉멋이 들어버린 인문학도일까. 만약 그가 한국문학의 모더니스트 가운데서도 가장 급진적인 작가에 속하는 이상李箱이고, 고작 26세에 쓴 글이라 한다면 누군가는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당나라 시인을 흠모하는 젊은 모더니스트’란 진술은 빈약한 상상력에 생채기를 내기 십상이지만, 어쩌겠는가, 이상이 유서처럼 써내려간 「종생기終生記」에서 이렇게 말해놓은 것을. 그런데 고전에 관심이 많았던 이상이라 할지라도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나 백거이, 소동파 등을 제쳐두고 이태백을 호출한 까닭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암만해도 나는 십구세기十九世紀와 이십세기二十世紀 틈사구니에 끼워 졸도卒倒하려 드는 무뢰한無賴漢인 모양이오.” 

이상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통과 근대, 조선과 일본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 불안과 고통이 배어있다.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 25세와 11개월의 「홍안미소년」”이란 사실과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노옹老翁이다.”라고 느끼는 감정 사이의 격절隔絶도 이런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함축한다. 

이태백 역시 시대와 재능 사이의 시차 때문에 제 한 몸 둘 곳도 마땅치 않았던 인물이다. 처음엔 ‘하늘이 내린 재능은 반드시 쓰일 것(天生我材必有用)’이라 스스로 위안하며 ‘벗 없이 홀로 술을 마시며(獨酌無相親)’ 울분을 견뎠지만 천재를 품기엔 세상은 너무 느리고 비루했다. 결국 그는 ‘고금의 성현 따위는 모두 적막하고(古來聖賢皆寂寞)’, ‘오직 술꾼만 그 이름을 남긴다(惟有飮者留其名)’고 노래하며 유가儒家가 내세운 천명天命이니 인륜이니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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