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장 화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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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장 화암 스님
  • 김성동
  • 승인 2017.09.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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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은 간절하게, 일심으로 부처님께 권청하는 것
사진. 최배문

1986년 여름, 강남 봉은사 신도 대중들이 사시기도 마치고, 일주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 절 스피커를 타고 낯선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신도들이 발길을 멈추고 염불에 귀를 기울였다. 일주문까지 왔던 발길을 되돌려 염불 소리를 따라 법당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염불이 끝나자 법당 안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스님이 나왔다. 화암 스님(64)이었다. 법당 앞뜰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합장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교계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염불 하나로 신도 대중의 마음에 깊은 각인을 심어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화암 스님은 “염불 잘 하는 스님”으로 불리게 됐다. 1년 후 스님은 교계에서는 최초로 스테레오 기기로 녹음한 염불 테이프 ‘예불 천수경’을 제작했다. 당시 이 테이프는 레코드 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80년대 후반 절이나 차에서 흘러나오는 염불 소리의 대부분은 바로 화암 스님의 목소리다. 

|    조용필 4천원, 화암 스님 5천원

- 교계에서 젊은 스님이 카세트 테이프를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당시 봉은사에서 기도법사 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입시 기도를 처음 했을 때는 200여 명 정도였는데, 1년 후에는 1,200여 명이었죠. 아주 대단한 반응이었습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다 불러주면서 염불했습니다. 염불하면 신도님들이 내 앞에 녹음기를 놓고 내 염불 소리를 녹음했어요. 녹음기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수십 대가 놓였습니다. 근데 녹음 질도 좋지 않았고, 어떤 때는 감기 걸린 기침 소리 그대로 녹음되어 돌아다녔어요. 아찔했죠. 결국 정식 녹음테이프를 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 봉은사뿐 아니라 조계사 앞에서도 스님의 독경 소리가 울렸다고 합니다. 

“그랬죠. 당시 조용필 테이프가 4천원이었고, 대부분은 1천원, 2천원이었는데, 나는 염불 테이프 정가를 5천원으로 정했어요.(웃음) 조계사 앞을 지나가면 불구판매점에서 내 염불 소리가 들려 등에 식은땀이 흘렀어요. 부끄러웠습니다.”

- 당시에 젊은 스님이 혜성 같이 나타났는데, 염불은 어떻게 배우셨는가요.

“내가 출가할 때는 지금처럼 종단에서 염불을 가르치는 곳이 없었습니다. 염불은 출가 은사인 성암 스님께 배웠습니다. 성암 스님의 염불은 아주 간절했습니다. 행자 생활 3년 동안 대부분의 염불 기도를 다 배웠습니다. 한번은 새벽 도량석을 먼저 하려고 다른 행자와 목탁을 차지하려는 경쟁도 했어요. 잠자기 전에 목탁을 머리맡에 놓으면 어느새 다른 행자가 목탁을 자기 머리맡으로 옮겼어요. (웃음) 은사스님은 내 목소리가 좋다고 녹음기로 녹음해서 절에서 하루 종일 틀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당대 염불명인이었던 해인사 명진 스님, 성공 스님, 영철 스님, 이런 분들과 수많은 옛날 노전스님들에게 배웠습니다.”

해인사 강원과 백양사 강원에서 통강 스님과 각성 스님께 경經을 배웠다.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을 다녔다. 선방과 대중처소 외에는 대부분 백일기도를 하면서 염불을 이어갔다. 개운사 승가대학 시절인 1981년. 몸이 많이 아팠다. 43kg까지 몸무게가 빠졌다. 병원에서는 별 증세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죽을 것만 같았다. 삼척 관음암에서 죽을 생각까지 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이승에서 몸을 접는 것까지 생각했다. 살아난다면 전법을 각오하며 몸을 스스로 제한했다. 팔과 다리를 묶고 생활하기도 하고, 귀와 콧구멍을 막기도 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시간을 잊어버렸다. 저녁 염불을 시작하면 어느새 새벽에 염불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간절하게 관음기도를 이어갔다. 보고 싶을 때 관음보살이 나타나길 반복한다. 설핏 자다보면 관음보살 무릎 위에서 깼다. 이렇게 백일기도를 마치자 병이 회복됐다. 

“죽을 각오로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그때 경험했던 염불 기도 때문입니다. 간절하면 부처님이 감응하고 가피가 옵니다. 간절하지 않은데 어떻게 감응이 오겠어요. 감응이 없는데 어떻게 가피가 옵니까.”

|    우리말 염불의례가 세상에 나오다

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장. 지금 스님이 맡고 있는 소임이다. 일반 신도들에게는 낯설지만, 스님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2010년 이전까지 조계종에는 염불을 가르치는 공식 기구가 없었다. 도량석부터 새벽예불, 각종 불교의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인연을 통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화암 스님이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과 만나면서 염불이 전국의 승가대학에서 공식 교육커리큘럼으로 자리 잡았다. 현응 스님의 제안과 화암 스님의 염원은 한국불교에 염불의례의 전환을 일으켰다. 종단 처음으로 염불 교육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고, 교육용 교재인 『염불상용의례집』이 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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