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방랑기] 충남 논산 관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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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방랑기] 충남 논산 관촉사
  • 이광이
  • 승인 2017.09.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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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이시여 56억 년 뒤가 아니라, 어서 오시어 천지를 개벽하소서”
사진. 최배문

황산벌은 백제가 두 번 멸망한 곳이다. 한 번은 계백의 백제가, 또 한 번은 견훤의 후백제가 최후의 격전을 벌이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땅. 백성들은 백제의 유민이었다가, 신라의 식민이었다가, 후백제의 난민이었다가, 이제 고려의 국민이 되어야 한다. 고작 삼백여 년 사이에 도대체 나라가 몇 번 바뀌고 임금은 또 누구인가! 장정들은 전장에서 다 죽어나가고, 농사지어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늙은이와 아녀자와 어린 것들의 절망의 땅.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이다. 비루하게 연명하는 그 속에서도 장구한 뿌리는 백제였고, 삶을 지탱하는 한줄기의 빛이 있었으니, 그것이 미륵이다.

어느 봄날 반야산에서 한 여인이 나물을 뜯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 가보니 갑자기 거대한 바위가 솟아 올라왔다. 이를 관에 알렸더니, 조정에서 기이하게 여겼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큰 부처를 조성하라고 하늘에서 내려준 길조”라 결론짓고, 금강산 혜명 대사를 불러 석불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광종 19년, 968년의 일이다.(관촉사 사적기) 후백제의 멸망(935)으로부터 불과 32년 지났을 때다. 망국의 설움과 울분이 채 가시지 않았을 것이고, 고려에 대한 충忠이 싹트기에는 아직 짧은 세월이다. 그들에게 저항의식을 약화시키면서 고려 국민으로 일체감을 갖고 복속시키기에 이만한 대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일주문 안으로 가을이 들어오고 있다. 처서處暑에서 더위는 멈추고, 단단하게 묶여 있던 여름은 맥없이 풀려 물처럼 흘러간다. 그 자리에 엎드려 있던 가을이 바람 따라 다가와 살갗에 닿는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이 순간이다. 들에는 매미 울음소리 사라지고 쓰르라미가 운다. 푸릇푸릇하던 것들이 누릇누릇하게, 기다리며 뜸을 들이는 시간이다. 지금 안 익으면 영영 못 익고 만다. 익어간다는 것은 단맛이 드는 것이고, 누렇거나 붉어지는 것이고, 약간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다. 천하에 소슬한 기운이 가득한 밤하늘, 은진미륵 위로 별이 총총히 떴다. 머잖아 칠석이다. 태초의 색처럼 검푸른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가닥 흰 구름이 지나가고, 북으로 북극성이 제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동쪽으로는 견우성과 직녀성과 데네브, ‘여름의 대 삼각형’을 이룬 세 개의 별이 밝게 빛나고 있다.

저 거대한 석불은 미륵인가, 관음인가?  

관촉사 주지 혜광 스님은 “그거 여전히 논란이라.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관음상이 맞아요. 넓이가 한 평이나 되는 부처의 큰 갓 위에 금동화불을 두르고 있었다고 하고, 오른손에 연꽃을 들고 있잖아요? 그러니 관음상이지, 현세불이라. 저렇게 생긴 미륵불 봤어요?”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진미륵이라고 하잖습니까? 미륵하고 관음은 뭐가 다른가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스님은 “미륵불은 투박하면서도 온화한 미소가 이웃집 아저씨같이 정겹고 그러잖아요? 그것은 먼 훗날에 올 부처라, 미래불未來佛이지. 그런데 관음은 당장 중생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구원해주는 현세불現世佛”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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