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말의 사료를 드신 붓다
상태바
[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말의 사료를 드신 붓다
  • 성재헌
  • 승인 2017.06.18 1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노와 원망과 자학 없이

세상사는 실로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고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나도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나에게 악의적인 사람에게는 나도 악의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는 인간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되갚아주는 것이 세상살이에서는 정의正義로 통한다. 하지만 붓다는 그런 정의를 부정하셨다. 왜일까? 그 정의의 실현이 고통의 해소가 아니라 새로운 고통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 하지 마라.”고 하신 붓다의 말씀은 백 번 천 번 지당하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그 실상을 뼈저리게 절감하고도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은 욕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그 불편함과 불쾌함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버리고, 텅 빈 허공처럼 타인의 모욕적 언사와 폭력적 행태를 저항 없이 수용한다는 것, 이는 실로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추위가 닥쳐보아야 소나무 잣나무가 쉽게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나 보다. 

“나는 왜 붓다를 존경할까?” 

한때는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과 부드러운 그 미소에 반한 적이 있었고, 한때는 왕과 귀족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군중들이 귀의하고 살인마와 창녀까지도 단숨에 제도했다는 영웅담에 부러운 적도 있었고, 또 한때는 심오하고 진실한 말씀에 매료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 지금 “당신은 왜 붓다를 존경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분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언젠가 붓다께서 사위성에 머무실 때였다. 

코살라국의 서부에 있던 웨란자의 통치자 악기닷따 바라문이 사위성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정 도중 붓다의 명성을 들은 악기닷따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기원정사로 찾아왔다. 소문대로 붓다는 황금처럼 빛나는 풍모에 그 가르침은 불꽃처럼 맹렬하였다. 붓다에게 감복한 악기닷따는 기원정사를 떠나면서 호기롭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번 우기에는 제자들과 함께 저희 웨란자로 오셔서 안거하소서.”

붓다께서는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고, 우기가 다가오자 500명의 비구와 함께 웨란자로 향하셨다. 그런데 정작 붓다 일행이 웨란자에 도착하자 악기닷따는 마중은커녕 문까지 닫아걸고 대면도 하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웨란자는 서부 변방의 낯선 땅이었고, 그곳 사람들은 붓다가 누구인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초대한 사람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해 웨란자는 기근이 들어 식량이 풍족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500명의 비구가 3개월간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악기닷따의 약속만 믿고 먼 길을 온 비구들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마을로 걸식을 나선 비구들은 빈 발우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누군가 식은 밥 한 덩이라도 얻으면 서로 나누어 간신히 주린 배를 달래야만 했다. 오랜 굶주림에 비구들은 하나같이 시들어갔다. 제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청했지만 붓다는 거절하셨다. 

“이미 정한 규율이다. 안거하는 장소는 도중에 바꿀 수 없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