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공안公案은 독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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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공안公案은 독毒이다
  • 박재현
  • 승인 2017.06.1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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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이 화석화, 의례화된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모두 준비된 사수射手가 되어버렸다. 정해진 질문을 하고, 예정된 대답을 한다. 사수는 준비하면서 헤아리고 헤아리면서 준비한다. 헤아리고 또 헤아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한다. 유가儒家의 깊은 도리는 곧잘 활쏘기에 비유되지만, 헤아림은 선가禪家의 경계처다. 헤아려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선이 지향하는 곳이 아닐 것이다. 화두는, 엉겁결에 들이닥쳐야 화두가 된다.

선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선사도 아니고 출가수행자도 아닌 사람들…. 그냥 오다가다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이다. 옆집 아저씨도 있고, 구멍가게 아주머니도 있고,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은 흙 묻은 손과 재 묻은 얼굴을 하고 갑자기 나타나 씩 웃는다. 척박하고 촌스러운 그들이 선이 끝내 지향하는 지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놀라워하다가, 이내 가슴이 먹먹하고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지경이 되고 나면, 갑자기 미친 것처럼 웃음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禪은 너무 가까워서 도리어 멀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시기가 후대로 내려올수록 선문답은 점점 더 조밀하고 정형화되어 왔다. 이렇게 되면서 선문답의 골수라고 할 수 있는 즉흥성의 묘미는 많이 탈색된 것 또한 사실이다. 선禪 문헌에서 각각의 공안公案마다 제목이 붙기 시작할 즈음부터 공안公案은 풀이 죽기 시작했다. 서술이나 진술 혹은 설명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활구活句가 점점 시들어 사구死句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명되고 진술되면서 원래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생명력이 소진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술되거나 설명되는 공안은 엉겁결에 들이닥치는 공안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공들인 작품처럼 정교하게 잘 짜여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의 의식을 계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야기가 만들어진 그 현장의 느낌을 되살려내기 위해 우리는, 설명되고 진술되어 왔던 글자를 버리거나 넘어서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날 것에 가까운 공안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방 거사가 하루는 (길에서 우연히) 목동을 만나 

물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가느냐?”(路從什麼處去)

목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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