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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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 김성동
  • 승인 2017.06.1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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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덕분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나입니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사진 : 최배문

“당신 덕분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나입니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2012년 7월 8일 새벽 2시. 미황사 주지실에 불이 켜져 있다. 금강 스님은 8박 9일 일정의 ‘청년출가학교’에 참여한 20대 청춘 40명 개개인에게 짧은 엽서 편지를 붓펜으로 쓰고 있었다. 밤 10시까지 일정을 마치고 내일 예정된 회향식에 전해줄 법명法名을 완료한 상태였다. 당시 나는 조계종 연수팀장으로 ‘청년출가학교’ 실무를 맡았다. 옆에서 졸린 눈을 누르고 “스님, 이렇게 개인별로 쓸 필요가 있나요?” 하며 짐짓 몇 시간 이후의 새벽예불 일정을 걱정했다. 스님은 “아, 한 장 한 장 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받는 사람이 얼마나 좋겠어요.” 하며 눈을 엽서에 바짝 대고 글씨가 흐트러질까 집중해 써내려갔다. 겨우 편지쓰기 끝내는 것을 본 후 나는 옆방 숙소로 들어갔다. 오전 4시 새벽예불 소리가 얼핏 났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웅전에서 금강 스님의 예불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밤을 그냥 보낸 듯했다. 스님이 지도법사로 참여한 프로그램을 실무하면서 ‘정성을 다한다.’는 말을 눈앞에서 본 셈이다. 오랫동안 몸에 익힌 습관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모습이다.

| 2천여 명과 수행 면담한 스님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1982년 17살 때 해남 대흥사에서 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니, 절집에 온 지 햇수로 35년이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작년 12월 31일에 천일결사를 회향하고, 올해 2월에는 미황사에서 10여 년간 이어온 수행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가 100회를 맞았다. 매회 20명 안팎의 사람들이 참여했으니 스님이 직접 수행 면담을 한 사람이 2천여 명에 이른 셈이다. 백양사에서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수행결사’를 20여 차례 진행한 것을 더하면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이는 더 늘어난다. 7박 8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스님이 온전히 홀로 끌고 간다. 스님과 개인별 수행 면담이 필수다. 2천여 명이 스님과 내밀한 면담을 이어간 것이다. 한국불교계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고민과 생각을 듣고, 수행 지도를 한 스님이 또 있을까?

“서울에서 중앙승가대학을 다녔고, 94년 종단개혁과 95년 실천불교승가회 조직국장을 했습니다. 도회지에 많이 살았죠. 그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불교의 미래가 사회변혁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승가를 오랫동안 말씀하십니다. 모여서 함께 수행하는 것. 이것에 온 에너지를 쏟으셨습니다. 승가라는 모델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또 스님들이 어떻게 모이고 공부해야 하는가를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바람직한 승가 모델을 만드는 것이 인류의 마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도 승가에서 지혜와 자비가 나왔고, 어느 나라로 전파되어도 승가가 구성되었기에 그 수행의 향기로 사람들에게 지혜와 자비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승가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스님은 미황사 이전에 백양사에서 97년부터 2년 동안 ‘참사람 수행결사’를 5박 6일 프로그램으로 20여 차례 진행했습니다.

“서옹 스님이 방장으로 계실 때 늘 ‘참사람 운동’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시대는 인류가 위험한 시대다. 이것을 회복하려면 참사람 운동을 해야 한다. 그대가 그것을 해보라.’ 깜짝 놀랐습니다. 87세 노장이 떠날 준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자비심이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참사람 운동’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 스님이 ‘참사람의 향기’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노스님의 영향이 컸겠습니다.

“그때 방장실 옆이 접견실인데, 그곳에서 5박 6일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방장스님 방 옆에서요. 당신이 하라고 했습니다.(웃음) 서옹 스님께서 법문하고. 그렇게 20회 정도 했습니다. 그때 노스님이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지도하는지, 법문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서옹 스님은 자비보살이었습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만났습니다. 수좌도 그렇고 누구나 공부를 물어오면 다 만나고 이야기했습니다. 시간도 철저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한 겨울에도 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키고, 연로해 새벽에 법당을 못 가니까 방에서 가사 장삼을 수하고 예불합니다. 오전과 오후에 산책 시간도 정확하죠. 결제 때에는 5일에 한 번씩 『벽암록』 제창도 하셨죠.”

- ‘참사람 수행결사’를 20여 차례 운영한 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IMF 실직자 단기출가도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내가 (수행프로그램을) 평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진짜다, 진짜 수행이 필요한 곳은 산속의 스님들보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수행하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현대인들에게 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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