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해남 미황사 천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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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해남 미황사 천불도
  • 강호진
  • 승인 2017.06.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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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
해남 미황사 천불도 | 사진 : 최배문

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

몇 해 전, 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출가 권유는 으레 건네는 인사말 같은 것임을 알기에 “모든 사람이 다 출가하면 스님들은 누가 먹여 살립니까?”라고 받아넘겼는데, 되돌아온 말이 걸작이었다.

“걱정 마세요. 세상에 중생들은 차고 넘치니까요.”

중생은 원래 범어 사트바sattva를 번역한 말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뜻하며 유정有情이라고도 한다. 좁게는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자신과 남을 고통 속에 빠트리는 이들을 일컫기도 하는데, ‘아이고, 이 중생아.’라고 말할 때는 후자의 뜻이다. 고통과 번민 속에 허덕이는 가련한 목숨들과 정반대편에 있는 존재는 누구일까? 알다시피 ‘천상천하 유아독존’, 바로 오직 홀로 존귀한 붓다이다. 

깨달은 이를 뜻하는 붓다는 불타佛陀나 부도浮屠 등의 한자 음차로 쓰이다가 우리말 ‘부처’로 정착을 했지만, 역사상 실존한 붓다는 고타마 싯다르타란 이름을 지닌 석가모니뿐이다. 그렇다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은 1,250명의 제자들은 부처가 아니란 말인가? 당시에 깨달음을 얻은 이를 통상적으로 아라한이라 불렀을 뿐, 감히 붓다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붓다란 말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오직 석가모니에 한정되는 고유명사로 출발했다. 절집에서 흔하디 흔한 보살이란 말도 실은 전생의 수행자 시절 석가모니만을 지칭하기 위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붓다가 열반에 든 후 교학적 이론들이 발달하고, 시공간에 대한 세계관이 심화되면서 부처란 명칭은 석가모니란 역사적 인물에서 조금씩 벗어나 부처가 곧 진리라는 추상적 논의로 그 외연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한다.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석가모니와 다른 인격으로 상정된 아미타불이나 미륵불 같은 여러 부처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화엄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국토마다 헤아릴 수 없는 여래가 존재한다는 기술에까지 나아간다. 중국 선불교에 이르면 붓다가 지닌 권위를 파괴하는 일군의 승려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흔히 조사祖師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조사와 그 후계자들은 살불살조殺佛殺祖와 불립문자란 기치를 세우고 여래선 위에 조사선을 버젓이 놓기도 하고, ‘석가도 몰랐거늘, 어찌 가섭에게 전했으랴.’ 하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또한 어록에다 ‘경(『육조단경』)’이란 명칭을 붙이기도 하고, 기존의 경전 대신 ‘자신 안의 부처를 보라.’고 주장하니, 말 그대로 부처가 중생 수만큼 차고 넘치는 시대, ‘보통부처들의 위대한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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