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방랑기] 경남 창녕 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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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방랑기] 경남 창녕 관룡사
  • 이광이
  • 승인 2017.05.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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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의 배가 출항하는 것을 보았는가?
 
관룡사觀龍寺는 원효 대사가 백일기도를 마치고 회향하는 날, 갑자기 화왕산 마루에 뇌성벽력이 치더니, 삼지三池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는 데서 이름을 가져왔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정말 봤을까, 그래서 ‘관룡觀龍’이다.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 ‘견見’이고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이 ‘관觀’이다. 눈에 비치는 세상이 다는 아닐진대, 관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할 때 그 관이다. 관룡사는 신라 내물왕 39년(394년)에 창건했다고 신라연호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곳은 옛 가야의 땅이었다. 대가야가 멸망(562년)하기까지 2백 년 가까이 가야의 숨결이 서린 곳이다. 신라와 남북국시대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러 1,600년, 관룡사는 한국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다. 
 
절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딱 하나의 목조 법당이 화마를 피했으니, 약사전이다. 영운 스님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가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펴보다가 들보 끝에서 ‘永和五年己酉(영화5년기유)’라는 문자를 발견했다. 그 후로 관룡사에서 기도를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이 널리 찾는 영험한 수행지가 되었다고 한다.   
 
주지, 우현 스님은 저녁공양을 마친 우리에게 보이차를 내주었다. 통도사 승가대학 교수를 지낸 스님은 교리에 두루 해박했고, 이것저것 막힘이 없었다. 
 
“스님, 한 가지 소원은 어떻게 이뤄집니까?”하고 물었더니,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으면 이뤄집니다.”라고 말했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믿고 이해하고 행하고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것보다 믿는 것이 먼저입니다.”  
 
“믿음은 뭔가요?”
 
“그 사람의 말이 정말 그러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의심의 시간을 거쳐 자기 스스로 확신이 섰을 때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뭘 믿는 것입니까?”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처고 내 소원은 내가 이룬다는 것을 믿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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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의심스럽다. 관룡사에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호객용 카피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스님이 단박에 “그거 맞아요, 유인책이죠.”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사람이 와야 병을 고치죠, 관룡사는 약사여래불로 유명한 곳이라, 말하자면 마음의 병원이라 할까요? 그래서 오라는 거예요. 소원을 하나씩 들고. 그 소원은 대개 병을 고치는 것이지요. 살다보면 몸도 마음도 병들고 그럴 것 아닙니까? 절에 가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까 속는 셈치고 가보자 해서 옵니다. 약사전에 들어가서 괴로움을 퇴치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지요. 하루 종일 기도만 할 수는 없으니, 저 산위에 용선대龍船臺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산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하지요. 걷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환경이 바뀌니까 생각도 바뀌고. 병에 대한 인과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이 포행이고 수행입니다. 용선대의 벼랑 위에서 저 신라시대의 석불을 만납니다. 광활하게 펼쳐지는 커다란 세상을 마주하게 되지요. 1,600년 동안 거기 앉아 있는 부처의 절대고독 앞에서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비춰보게 됩니다. 뭔가를 느끼고 깨닫게 되겠지요. 그리고 돌아 내려옵니다. 100일을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봐요.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원願은 이미 치유되었거나, 혹은 그 원의 허망함을 깨닫고 원 자체가 허물어져버리지 않겠느냐, 결국 원을 이루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관룡사의 스토리텔링이고, 힐링 구조라는 스님의 말씀은 명쾌했다. 기복이 껍질을 벗고 관념 밖으로 튀어 나올 때 힐링이 된다. 나는 반문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합장하고는 방을 나왔다. 함께 간 사진작가가 “혹시 상대가 안다리를 거는 힘을 역이용하여 바깥다리를 살짝 걸어 넘어뜨리는 유도의 기술을 아시냐?”는 고약한 질문을 던져, 우리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한참을 깔깔대고 웃었다. 
 
관룡사는 ‘전통사찰 1호’다. 단아하면서도 창연하고, 오랜 세월의 호흡이 살아있다. 돌 하나, 나무 하나에 옛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불상이다.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295호)은 신라시대, 약사전 석조여래좌상(519호)은 고려시대,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730호)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시대별로 불상이 있고, 셋 다 보물인 경우는 이곳뿐이다. 약사전도 명품이다. 화마를 피해 살아남았다는 것도 그렇고, 목조건물은 조선 초기 맞배지붕이며, 그 안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고려시대의 것이고, 그 앞에 삼층석탑은 신라시대의 양식이라, 당우 하나에 시간의 흔적들이 집약되어 있는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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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틀 무렵, 용선대로 올라갔다. 깎아지른 듯 바위가 솟아오른 벼랑 앞에 한 세상을 품을 만한 산과 들, 능선이 역광의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탁 트인 풍광이 펼쳐져 있다. 바위는 출항을 앞둔 배의 형상이다. 배의 이름은 반야용선般若龍船. 거기 앉아 있는 석불은 이 배의 선장이다. 출발지는 관룡사, 목적지는 피안이다. 정토는 어디이며, 정말 용선은 출항할까 하고 의심을 내었을 때, 골과 산의 선들이 붉게 물들고, 서서히 해가 떠올랐다. 따사로운 아침빛이 부처의 얼굴에 닿은 바로 그때,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나는 그 순간 석불의 입이 열리는 것을 ‘관觀’한 것이다. 아득한 시간의 저편, 적멸의 공간에서 마침내 들려오는 떨림이 있었으니, “수보리여, 반야般若의 물이 차올랐느냐, 그러면 바라밀다波羅蜜多, 저 언덕으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
 
그러고는 정말 용선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허공 위로 둥실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관룡사에서 품었던 한 가지 소원, ‘관룡’은 무엇일까 알고 싶었던 의문은 거기서 풀렸다. 물이 흘러가는 것, 꽃이 지는 것, 떠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관룡觀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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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전남 해남에서 1963년 태어났다. 조선대, 서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산과 절이 좋아 늘 돌아다녔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을 하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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