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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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박찬일
  • 승인 2017.04.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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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수필) 선정 | 박찬일 지음 | 정가 16,000원 | 출간일 2017-04-07 |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저자 박찬일 정가 16,000원
출간일 2017-04-07 분야 건강
책정보 판형_150*200mm|두께_18mm |분야_건강 | ISBN 978-89-7479-341-8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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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수필)

스타 셰프 박찬일과 사찰음식 대가 열세 스님이 함께 떠난 순수 본류의 맛 기행. 사계절 들판에서 만든 사찰음식 레시피 23가지 수록!
저자소개 위로
65년, 서울에서 났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녔지만, 시인과 소설가의 친구가 되었을 뿐이다. 잡지기자로 일하면서 밥을 벌었다. 대개 기자는 취재원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말을 들으려 한다. 그것이 기자의 숙명이다. 그래서 마음 약한 그의 적성에 안 맞았을 것이다. ‘죽어서 아무 말이 없는’ 재료를 다루는 게 요리사다. 저 커튼 뒤에서 손님과 대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요리사다. 그는 그걸 택했다. 세상이 바뀌어 오픈 주방이 생기고, 손님과 소통하며, 심지어 자신의 몸매와 유머감각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되어버릴 줄을 몰랐다. 운이 좋아서 청담동 부자동네에서 비싼 음식을 만들면서 지낸 적도 있다. 양식이라면 당연히 수입재료를 써야 하는 줄 알던 불문율을 깨고,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안 요리를 만들었다. 돼지고기를 스테이크로 만들고, 문어와 고등어와 미나리를 청담동 양식당의 고급 탁자에 올렸다. 그런 그의 방식은 크게 인기를 끌었고, 그 후 후배들이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었다. 산지와 요리사를 연결했으며, 제철 재료를 구해서 매일 메뉴를 바꾸는 방식을 처음으로 양식당에 도입하기도 했다. 서울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와 종로의 ‘광화문 몽로’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광화문에서 국밥과 냉면을 팔고 있다.
목차 위로
여는 글 • 아아, 잊고 있던 ‘본디’의 미각, 내 어린 시절의 맛이 거기 있었다


냉이 • 속도 고치고 마음도 씻으라고 냉잇국
미나리 • 미나리 파란 싹, 사철 먹으면 신선이 될까
고사리 • 섬진강 새벽에 고개 드는 고사리의 정한 마음
국수 • 문득, 국수 한 그릇 하고 싶다
명이 • 아아, 저 들과 산에 봄에 나는 풋것들

여름
보리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오는 그리움
오이 • 아삭, 생오이 같은 초여름 어느 날
감자 • 별똥별 캐러 감자밭으로 가다
옥수수 • 어여쁜 청춘처럼 고르고 싱싱한 알갱이들
밀 • 까슬까슬 밀 이삭, 다 저 살자고 하는 눈물겨운 진화
매실 • 봄엔 매화 보고 가을엔 매실 먹고

가을
토마토 • 나의 최초의 토마토를 찾아가다
수수 • 빗자루 하려고 밭둑에 한 줄 심는 게 고작이었지
장 • 오랜 일꾼들은 스스로 된장이 되었다
포도 • 마지막 가을볕은 포도를 위해 베푸소서
늙은 호박 • 어디 한구석 표 나게 잘난 맛은 없어도
표고버섯 • 똑똑똑, 신께서 나오라고 신호를 보내시다

겨울
두부 • 부처가 내 빈속에 뜨끈한 두부로 오시다
김 • 화롯불에 구워 간장 찍어 먹으면 제일 맛있지
콩나물 • 기를 쓰고 자라려는 콩나물의 안간힘
시금치 • 빈 겨울 들판에 시금치 저 혼자 푸르다
미역 • 겨울 새벽바다에 미역을 걷어 올리는 어부가 있다
배추 • 도 닦는 일이나 배추 기르는 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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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박찬일과 열세 스님이 ‘들판에서 만든 사계절 사찰음식 레시피 23’

대안 스님 • 향긋 고소한 냉이 표고버섯전
적문 스님 • 고소하고 싹싹한 유부조림과 미나리무침
도림 스님 • 맛生生 기운生生 생고사리들깨찜
지유 스님 • 슴슴하고 단정한 버섯비빔국수
우관 스님 • 부드럽고 알싸한 명이나물초무침

선재 스님 • 정직한 여름 보양식 보리된장비빔밥
혜성 스님 • 여름 입맛 살리는 오이지냉국과 오이지무침
원상 스님 • 포슬포슬 유부 감자샐러드
적문 스님 • 알알이 톡톡 터지는 옥수수 장떡
선재 스님 • 쫄깃쫄깃 개운한 우리밀단호박수제비
혜성 스님 • 시원 달콤 매실장아찌

동원 스님 • 아삭 새콤한 토마토장아찌
보명 스님 • 그리운 어머니 손맛 수수팥떡
수진 스님 • 고소고소한 청국장빡빡장
성환 스님 • 송알송알 포도송편
보명 스님 • 푸근하고 따듯한 호박범벅
대안 스님 • 향긋한 가을향 표고별이선

우관 스님 • 두고두고 먹어도 맛있는 두부장아찌
정관 스님 • 바다 내음 물김국
동원 스님 • 매콤 고소한 콩나물찜
원상 스님 • 힘이 쑥쑥 시금치녹두전
도림 스님 • 추위를 녹이는 두부완자미역탕
정관 스님 • 깊어가는 겨울의 맛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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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열세 스님 소개(가나다순)

대안 스님 | 경남 산청 지리산 금수암 주지
도림 스님 | 경기 남양주 덕암사 주지
동원 스님 | 충남 서천군 천공사 주지
보명 스님 | 경북 경주(산내) 보광사 주지
선재 스님 |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성환 스님 | 전북 남원 극락암 주지
수진 스님 | 충남 서산 수도사 주지
우관 스님 | 경기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원장
원상 스님 | 경북 안동 토굴에서 정진 수행 중
적문 스님 | 경기 평택 수도사 주지
정관 스님 |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 주지
지유 스님 | 서울 수국사 사찰음식 강사스님
혜성 스님 | 경남 고성 여여암 주지
상세소개 위로
스타 셰프와 열세 스님과 농부들이
산 ․ 들 ․ 바다에서 차린 소박한 맛의 성찬들
이탈리아 요리계의 스타 셰프이자, 글 잘 쓰는 요리사로 알려진 박찬일. 그래서 그가 쓰는 ‘먹는 이야기’ 만큼은 믿고 읽는다. 그가 이번엔 순수의 맛을 찾아 나섰다. 현대인의 극단적 식습관인 폭식과 미식美食. 그 사이에서 본류의 맛은 점점 잊혀 가고 있다. 자연에서 막 거둔 재료에 과장이 없는 조리 과정과 양념을 더한 최선의 맛! 그 맛을 찾아 그는 산과 들, 바다를 누볐다. 여정에는 정관, 선재, 대안, 우관, 적문 스님 등 사찰음식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열세 분의 스님이 동행했고, 농부들은 그들이 일구는 땅으로 기꺼이 안내했다.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이 땅에서 자라는 작물이 가장 성숙한 때를 기다렸다가 손수 거두어 음식을 만들었다. 산과 들, 바다가 내준 부엌에서 차려낸 맛의 성찬은 3년여 동안 계속되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소박한 기록이다.

왜 맛집 순례가 아니고 음식 재료 기행인가
섭생은 땅에서 시작한다
요리의 시작은 땅이다. 맛은 땅에서 시작한다. 스님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사찰음식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구고 거두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가 주방을 나와 땅으로 간 까닭이다. 거기서 그는 스스로 익기를 인내하는 작물의 간절한 시간들을 목격하며, 우리가 수없이 내뱉는 ‘맛이 있다, 없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가를 깨닫는다.

“냉이는 추운 겨울이 없으면 달고 깊은 향을 내지 못하며, 미나리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 없이 향을 세포 안에 축적할 수 없으며, 고사리는 딱 며칠간의 따스한 봄날에만 여린 싹을 허락한다.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며,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1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

그가 ‘여는 글’에서 “폭식을 미식으로 알고 음식재료 희롱함을 재주로 삼는 절망의 시기”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일 고농도의 맛이 퍼부어지니 어느새 우리의 미각은 순수한 맛을 달게 여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의 곁에서 스님들은 땅에서 바로 거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든다. 조리법은 간결했다. “맛은 재료의 힘이야. 기술이 다 무엇이야. 허명이지. 잘 기른 것, 잘 자란 것, 마음이 있는 것을 찾아서 써야 해.” 여정 내내 반복되는 스님의 말들. 더불어 스님의 음식을 맛보면서 그가 쏟아내는 감탄의 말들. 그 행간에서 우리 또한 ‘맛없다’는 말을 내뱉기 전에 맛의 근본과 기본을 떠올려 보게 된다.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요리사 박찬일의 고백
순수의 맛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사찰음식’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전통 한식이 곡절의 시대를 살면서 변해 가고 있을 때 고갱이를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사찰음식이다. 이는 산사 안에 갇혀 있어서 살아남은 셈이다. 그것은 절집의 맛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맛이기도 하다. 먹는 일을 절에서는 ‘공양供養’이라 한다. ‘베풀어 기르다, 주어서 가르치다.’ 불교의 정신은 모두 이 말로 수렴된다. 그리하여 식재료를 거두는 것에서부터 다루고 만들고 먹기까지 과정 전체가 모든 생명이 이롭도록 배려한다. 오직 맛으로만 음식을 만들고 먹고 평가받는 요리사에게 사찰음식은 먹는 일에 ‘이타심, 생명존중, 삶의 태도’가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운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 가지 깊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햇수로 3년여, 이 긴 기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기행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 몰랐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고, 무엇보다 스님을 믿지 못했다. 저 회색 옷 입은 수행자들이 하는 요리가 과연 그 명성만큼 맛있을까, 진짜일까. 고기도 육수도 향신채도 아니 조미료도 치즈도 쓰지 않고 과연 혀에 붙는 맛을 낼까. 한번은 한 스님에게서 밥상을 받았다. 아아, 잊고 있던 ‘본디’의 미각.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내 어린 시절의 맛이 거기 있었다. 나는 살짝 울 뻔했다. 그 감동은 다른 스님에게서도 이어졌다.
....
누군가 말한다. 수도하는 이들에게 미각이 무엇이며 요리법의 고민 이 무슨 사치냐고. 나도 그 말에 절반쯤 수긍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한참 본질에서 빗나간 것이다. 만물을 알뜰히 먹는 일은 수행의 고갱이다. 들과 산, 밭에서 얻은 것들을 다듬고 갈무리하고 불(火)과 장을 입혀 요리하는 일은 가장 숭고한 수도다. 그것을 맛있게 요리해서 수도하는 이들과 대중에게 내는 일보다 더 ‘수도승’다운 일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달라. 수행에는 각기 다른 방식이 있되, 일상의 수행은 하루 세 번의 끼니에서 출발한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종교 아니던가.

맛을 내는 일. 세상사와 인간사도 맛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맛내기란 최선을 다하는 것, 조화롭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웃음 짓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맛있게 읽는 법

① 이토록 다양한 음식의 언어들
“꼿꼿하고 은근한 미나리, 포슬포슬 데쳐 살살 결대로 찢어지는 고사리, 희고 단정한 국수에 슴슴한 양념을 얹어 비벼낸 국수, 청신하고 푸근한 보리밥, 밥 한 그릇이 간절한 고추장매실 장아찌, 아삭 생오이같이 기분 좋은 초여름, 수굿수굿한 메밀,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토마토, 말랑하고 쫄깃하고 버섯의 얇은 쪽은 바삭하고, 허한 속에 뜨끈한 두부가 들어온다.”
요리사 박찬일이 차려낸 풍성한 말의 성찬들을 음미하며, 나의 음식의 언어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주머니를 뒤져보라. 음식은 눈과 귀와 마음으로도 먹는다.

② ‘나의 최초의 토마토는 무엇이었나’
“토마토와 설탕은 상극이라고 하지만, 이게 보통 맛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토마토를 다 먹고 나서 차가운 그릇에 남아 있는 즙이 정말 엄청났다. 토마토 씨 덩어리가 점점이 떨어져 있고, 진한 즙에 설탕은 미처 입자가 채 녹지 않아 서걱거렸다. 그걸 후루룩 마시거나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이었다.” 박찬일이 간직한 최초의 토마토에 대한 기억이다. 추억의 반은 음식에 관한 것이다. 음식에 대한 따듯한 기억이 오늘의 당신을 위로한다.

③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을까
오이 농사는 오×이=십, 십 년 늙는 일이고 냉이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바다의 김은 하느님과의 동업이며, 고사리는 따스한 봄날 딱 며칠에만 여린 싹을 허락한다. 우리가 먹는 모든 먹을거리는 기실 대지의 마음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을까. 내 앞의 접시 위에 오른 음식이 간절한 이유를 헤아려보라. 내 몸은 본디 우주이니, 저 생명들의 보탬이 그저 가벼울 리가 없다. 마지막 콩나물 한 점까지 잘 먹자.

④ 고추밭에 스승이 있었다.
“고추 하나 얻어서 씨 심으면 백 개 이상 모종이 나오겠지요. 허나 그게 다 고추가 되지는 않아요. 우리가 죽어서 다시 사람 몸을 받는다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이지.”
“사람이나 배추나 같아. 이 배추는 90일짜리예요. 보통 60일짜리, 45일짜리가 많아요. 빨리 길러서 내면 좋지. 비용이 싸게 먹히고 망칠 위험도 적고. 그런데 90일이나 길고 길게 기르는 마음이 있어. 그 마음을 생각해봅시다. 도 닦는 일이나 배추 기르는 일이나.”
스님 몸을 빌려 나오는 들과 산의 목소리가 우리를 깨친다. 행간에서 스며 나오는 ‘자연의 법문’을 놓치지 마라.

⑤ 집에서 당장 해보는 사계절 사찰음식 레시피 23
사찰음식은 먹어서 영양을 취하되, 먹어서 덜어내는 일이다. 이 책에서 담긴 사찰음식 레시피는 저자와 스님이 들에서 바로 만들어 먹었던 것들이다. 조리법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배가 고프거든 조리법을 따라해 보라.
책속으로 위로
지나고 보니 긴 시간이다. 스님들과 세 해 가까이 이 나라의 들과 산을 다녔다. 작물이 자라는 시기를 기다려 가장 아름다운 때를 골랐다. 우리가 먹는 지구의 작물은 본디 다 자기 세계가 있었다. 무조건 먹히라고 태어나고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숙명적인 인간들이 그 틈에 개입하여 다른 질서를 만들어낸다. 인간이 씨를 받고, 심고, 키워서, 먹는다. 그것을 우리는 농사라 부른다. 질서 안에 불쑥 끼어든 다른 존재, 그러므로 인간은 세상 안에서 먹는 일에 겸손해야 한다. (‘여는 글’)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않는다기보다, 먹을 줄을 모르는 것이다. 말려서 포슬포슬하게 데친 고사리 맛을 보면 아마 도 유럽에서도 고사리가 인기 있을 것 같다. 인종과 상관없이 맛있는 건 맛있게 마련이니까. 살살 결대로 찢어지며, 야들한 고사리 맛을 모르 는 이들은 불행하다고 해도 좋으리라. (44쪽)

다들 고사리를 꺾는다. 고개 숙여 겸손하게, 인사하듯, 땅에 허리를 굽히고 냄새 맡으며 고사리를 얻는다. 어린 싹을 일찍이 내어준 고사리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도 고개 숙여 전한다. 이것이 만물의 진리, 섭생이 땅에서 시작하는 빳빳한 원칙이다. (45쪽)

도림 스님이 쓰는 비결이 하나 더 있다. 채수다. 채소를 우린 물을 이른다. 육수가 아니라 채수라는 말만 들어도 우리 미각이 경건해지는 것 같다. 서양 요리에서는 워낙 고기 우린 물을 많이 밑바탕 맛으로 쓰므로, 채수에 대응하는 말이 자연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순수하게 채소로 만든 액체도 ‘채소 육수vegetable stock’라고 부른 다. 스톡이란 말이 이미 육수란 뜻이니, 불립문자인 셈이다. 채수란 용어를 우리가 즐겨서 쓰면 어떨까 싶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도 일단 이 런 뜻의 채수는 올라 있지 않다. (47쪽)

스님이 보리밥을 짓는다. 기름 한 방울, 양념 하나 없이 호박이며 버섯을 볶고 딱 된장 한 가지만 넣어서 고명의 간을 하는데, 이게 진짜 별미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라기보다 천천히 젖어드는 오묘한 맛이다. 보리밥의 청신하고 푸근한 맛과 합쳐지니 더욱 산뜻하고도 고요한 맛 이 된다. 참기름도 뿌리지 않고, 재료가 가진 맛에 순전히 기대어 비벼 본다. 한 숟갈 뜬다. 이 맛이야. (85쪽)
오이지는 시간과 어울림의 음식이다. 소금과 물이 오이에 닿고, 속으로 들어가는 데 시간 이 걸린다. 오이가 그 소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시간의 힘이다. 삼투압이라는 과학성 이전의 우주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다. 그렇게 오이는 수분을 내어주고 ‘쫄깃하고도 아삭’해진다. 상식에 반하는 이 기묘한 결론. 그것이 요리라는 행위이고, 공양의 여러 갈래 중의 하나다. (97쪽)

지금 대중들의 관심은 먹는 일에 많이 경도되어 있다. 아쉽게도 그 것에는 쾌락의 측면이 강조될 뿐, 어디서 온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 하 는 생활 철학적인 면은 뒤로 물러앉아 있다. ‘먹방과 쿡방’은 어디까지 나 유행일 뿐, 삶의 본질과는 심하게 서걱거리는 사이다. 백종원 씨의 공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전국의 양념장 맛을 통일시킨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금 다시 우리가 음식을 봐야 해요. 식食, 먹을 식. 사찰음식이 이 시대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기이기도 하죠.”
음식이 쾌락이되, 쾌락을 강조하면 교만해진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다. (109쪽)

“옥수수도 맛이 있어야지요. 오늘 좋은 옥수수를 공양했습니다. 사찰음식이 저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채집하고 수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현장을 보니 참 좋습니다.”
옥수수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구휼의 역사를 가진 작물인 것이다. 나눠준다는 것, 그것이 보시의 마음이며 부처님 아닌가.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옥수수를 보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121쪽)

“본디 불교에서 밥할 때도 다라니를 치면서, 기도를 하면서 한다고 하잖아요. 오욕락五慾樂을 멀리하자는 건, 먹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니 잘 먹자고 하는 일이 다 계율에 맞지 않고 도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우리의 사찰음식이라는 게 그렇지.”
고운 토마토를 보다가 이야기가 음식 짓는 덕의 문제로 넘어간다. 식욕을 억제하는 것이 기본적인 도라는 말씀, 그런데 먹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 물리치나요.
“그것이 도를 이루는 데 기본적인 훈련이지요. 혀의 쾌락, 배를 채워서 얻는 쾌락을 조절하지 못하고 어떻게 도를 이야기하겠어요. 어리석은 일입니다.” (156쪽)

가을인데, 다 저무는 가을인데, 저 일체중생은 왜 살겠다고 뿌리를 내고 싹을 돋우는지. 다시 밥상으로 생각이 저대로 돌아가 쌉쌀한 여 운을 남긴다. 스님의 늙은 호박국에 딱 한 점 들어 있던 작고 매운 풋고추 조각 때문이었다. 점을 찍듯이, 덤덤한 국과 건더기 위에 조촐하던 풋 고추의 매운맛이 다시 혀에서 돋았다. 우리는 그저 살아내는 것인가. 살아냄으로써 다시 무엇을 이루려는 것인가. 작은 고추 조각 한 점이 그 느른한 마음을 찌른다. (205쪽)

“고추 하나 얻어서 씨 심으면 백 개 이상 모종이 나오겠지요. 산술적으로. 허나 그게 다 고추가 되지는 않아요. 우리가 죽어서 다시 사람 몸을 받는다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이지. 내 몸을 안다는 건 그래서 비상한 일이야, 정말 대단해요.”
영원한 것은 없어요, 라고 말씀을 닫는데 나는 그것을 무진無盡으로 들었다. 유한한 것과 무진의 이율배반, 우리가 살아가는 건 어쩌면 이 불가해의 늪에서 뚜렷하게 무언가를 보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고추씨처럼 덕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겠다, 그런 마음이 있어요.” (206쪽)

요즘 콩나물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은 단지 기호의 변화가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이른바 ‘집밥’을 먹는 환경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가 준비하는 따뜻하고 정이 있는 가족 식사의 붕괴를 의미한다. 어쩌면 콩나물이란 잠수함의 토끼처럼 가족 붕괴의 신호 상징물인지도 모른다. 산소가 부족하면 토끼가 먼저 알아채듯, 콩나물 맛을 잃어버리는 것은 전통적인 가족상이 무너진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269쪽)
언론사 서평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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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포커스 ]  박찬일 셰프와 스님과 농부들의 레시피  2017-04-14  
[ 부산일보 ]  [시선] 스님 뭐예요? 절집 부엌친구 하동서 만난 고사리  2017-04-14  
[ 경인일보 ]  [봄철 입맛 당겨주는 책 4選]제철 성찬으로 오감 돋워볼까  2017-04-14  
[ 기호일보 ]  신간 소개  2017-04-13  
[ 한겨레신문 ]  신간 소개  2017-04-14 
[ 불교신문 ]  스타셰프, 절밥 먹고 "나 살짝 울뻔했다"  2017-04-17  
[ 동아일보 ]  박찬일 “절밥이 특별히 맛있는 건 재료에 대한 집중력 덕분”  2017-04-18  
[ 법보신문 ]  음식재료 기행에서 진짜 사찰음식 만나다  2017-04-17  
[ 오마이뉴스 ]  절밥이 맛있는 비결,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2017-04-18 
[ BTN 불교TV ] 행복한 불서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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