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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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2.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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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에저 터커,박중서 | 18,000원 | 2014-12-15 | 판형: 147*217mm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저작·역자 아비에저 터커,박중서 정가 18,000원
출간일 2014-12-15 분야 인문
책정보 판형: 147*217mm, 두께: 20mm, 값: 18,000원, ISBN 978-89-9860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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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소크라테스가 이웃에 살아 우리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요새 쓰는 말로, 우리가 고민하는 이슈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토론할 수 있다면, 철학 하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저자소개 위로
지은이 아비에저 터커(Aviezer Tucker)
매릴랜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으로 정치학을 연구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스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 역사, 예술, 종교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현대인도 플라톤 대화편을 읽을 수 있도록, 현대 미국인이 처한 딜레마를 소재로 삼아 플라톤 대화편을 리라이팅했다. 그러는 가운데 본인의 경험도 글감으로 사용했는데, 대학 당국의 비밀 정보원 노릇을 대가로 한 자리 보전과 해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 이 책의 4부에서 자신의 입장을 확신에 찬 어조로 생생하게 재현했다.
저서로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 역사편찬학의 철학』 『체코 반골들의 철학과 정치학: 파토치카부터 하벨까지』 『역사와 역사편찬학의 철학 안내서』(편저) 등이 있고,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옮긴이 박중서
출판기획가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센터(KCC)에서 근무했으며, ‘책에 대한 책’ 시리즈를 기획했다. 옮긴 책으로는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언어의 천재들』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수다』 『아주 짧은 세계사』 『모뉴먼츠 맨』 『식량의 세계사』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지식의 역사』 『신화와 인생』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등이 있다.
목차 위로
들어가는 글

제1부 군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크리톤󰡕에 근거함)
징병 영장
여론을 따르는 건 옳은가
정의 vs 불의
정의, 법률의 지배, 민주주의

제2부 타고나서 쿨한 걸까, 배워서 쿨해지는 걸까 (󰡔메논󰡕에 근거함)
번지수가 틀린 질문
쿨함도 가지가지?
쿨함이란 무엇인가
기억으로서의 지식
배워서 쿨해질 수 있다면
결국엔 운!

제3부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할까, 아닐까 (󰡔에우티프론󰡕에 근거함)
고발당한 소크라테스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에
하느님과 윤리학
종교적 미덕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제4부 일자리냐, 양심이냐 (󰡔변론󰡕에 근거함)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잘못된 교육의 대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성찰하는 삶

제5부 죽음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파이돈󰡕에 근거함)
소크라테스와의 마지막 대화
철학자에게 죽음이란
죽음의 기예
반대자가 반대자를 낳는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기억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죽음 이후 영혼의 삶
영혼이 신체를 따라 죽는다면
철학자의 생존법
영혼은 신체에 종속되지 않는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관념 이론의 탄생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
증명하지 못한 한 가지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 앞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

더 읽을거리
옮긴이 후기
상세소개 위로
“이 책에 한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그건 바로 불의를 저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의로부터 고통받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일부 독자들에게 확신시키는 효과였으면 하는 것이 저자인 나의 바람이다.” - 「들어가는 글」 가운데

선택의 순간순간,
우리는 철학자가 된다

우리는 ‘점심엔 무얼 먹을까?’ 같은 평범한 일상의 문제에서도 고심하곤 한다. 다양한 선택지를 두루 비교하며 무엇이 ‘나’에게 더 이익인지를 따져 보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무엇이 더 ‘옳은지’를 두고 고심도 한다. 밥 한 공기를 줄줄이 따라 나오는 다양한 생각거리들, 예를 들면 육식이냐 채식이냐, 로컬 푸드냐 아니냐, 많이 먹을 것이냐 적게 먹을 것이냐 등을 붙잡고 있노라면 밥 생각이 달아날 정도이다.
인생에는 밥만큼, 혹은 밥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 것이며, 무슨 직업을 선택하고, 누구에게 투표를 할지 등등, 이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려 들면, 생각할 시간만 해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인생을 만들어 갈 중요한 결정들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인간은 강요됐든 아니든 “타고난 철학자”일 수밖에.

소크라테스가 이웃에 산다면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철학자가 있다. 2500년 전에 살다 간 소크라테스이다. 2014년을 사는 현대인에게 고조할아버지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크라테스. 그는 교과서에나 등장하며, 공부거리나 늘려 주는 박제된 철학자일 뿐일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 역사, 예술, 종교에 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우리에게 그의 말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이웃에 살아 우리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요새 쓰는 말로, 우리가 고민하는 이슈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토론할 수 있다면, 철학 하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플라톤 대화편은 우리 삶과 어떻게 만나는가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의 저자 아비에저 터커는, 플라톤 대화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다섯 작품 󰡔크리톤󰡕 󰡔메논󰡕 󰡔에우티프론󰡕 󰡔변론󰡕 󰡔파이돈󰡕이 우리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이 책에서 선보였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상대방이 나누는 대화를 단편 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간 이 책에서, 저자는 플라톤 대화편의 내용 전개를 고집스럽게 따라가며 플라톤 철학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악법도 법이라 말하며 독배를 마시는 장면을, 법치의 상대적 이점을 거론하며 징병 영장에 응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그려내거나, 아테네 법정에서의 변론 장면을, 세속적 성공을 위한 교육을 하라는 학교 당국의 요구에 맞서 철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기꺼이 파면당하는 교육자의 모습으로 재현하거나, 소크라테스의 죽음 장면을, 소신을 위해 안락사를 기쁜 마음으로 선택하는 철학자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등 현대의 딜레마 상황을 글감으로 삼음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이 플라톤의 사상을 우리들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철학 하는 삶의 불편함, 혹은 행복에 대하여

이 책은 플라톤 대화편으로 들어가는 입문서로도 훌륭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철학적 생활 안내서’로도 손색없다.
플라톤이 철학의 중요한 목표로 삼은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기예’로서의 철학이다. 이는 철학이 삶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데 기여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철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나 선함이 무엇인지 볼 수 있고, 그것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런 가치를 따르는 삶, 소신을 밀고 나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수시로 슬픈 혹은 비굴한 타협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스스로 점점 타락하고 있다는 자괴감 속에서 몸부림치든지, 아니면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 내면의 정의감 자체를 망각하는 삶 쪽으로 가든지 한다.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따르는 정의를 논리 정연하게 입증한 후, 거리낌 없이 전쟁터로 향하고 일자리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그는 입술을 꽉 깨물거나 주먹을 불끈 쥐는 대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황당함보다는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 괴짜 철학자의 행동 앞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인지를 곱씹어 본다.

소크라테스가 증명하지 못한 한 가지

“‘이것 보게, 심스.’ 소크라테스는 다소 야단치듯 말하더군요.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나는 그걸 전혀 증명하지는 못한다고 말이야.’”(380쪽)
안락사를 선택하고 죽음을 맞기 직전의 마지막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 이후 영혼의 삶에 대해 말한다. 신체와 분리된 영혼이 어디로 가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어떻게 순수한 관념(idea)들을 만나서 참된 지식을 얻는지, 어떻게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지 등등에 관한 “신화”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납득할 수 없는 두 친구 겸 제자가 거듭 질문을 던지고, 소크라테스는 결국 자신이 제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어쩌면 심지어 추측도 못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신화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시종 철저한 논증으로 일관하던 그도, 진리를 확인하고픈 희망과 죽음을 통해 영혼이 순수해질 수 있다는 믿음만은 버리기 싫었는지, 증명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추측도 못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철학 하는 삶에는 이성 못지않게 희망, 감정, 의지 역시 중요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소크라테스가 돌아왔다

소크라테스만큼이나 정의에 목을 매는 저자의(저자에게는 비밀 정보원 노릇을 하면 자리를 보전해 주겠다는 대학 당국의 유혹 대신 해고를 선택한 전력이 있음) 손을 거쳐, 잔소리꾼 소크라테스가 25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 시대에 돌아왔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크라테스. 그와 상대방이 벌이는 대화를 따라 가다 보면, 수시로 그의 논지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든다. 하지만 행간을 따라 가는 사이, 자기의 삶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와, 논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생각법이 우리 자신에게 스며든다면, 이만큼 행복한 독서 경험도 드물 것이다.
책속으로 위로
우리의 도덕적 원칙 때문에 개인적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갑자기 닥쳤을 때, 자신의 도덕적 확신을 바꾸고 나서 거기에 대해 핑계를 만들어 내서도 안 돼. 자기들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에는 버스가 반이나 비었다고 주장하다가, 자기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바로 그 순간부터 버스가 꽉 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 우리는 그런 사람들하고 똑같아지고 싶지는 않잖아. -1부 「군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34쪽

강의하고, 구술하고, 웹사이트에 강의 요약문을 올려놓는 교사들은 자네를 더 똑똑하게 만들지도 않고, 자네가 뭔가를 알게 만들지도 않아. 자네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철학자들은 오로지 자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심지어 자네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 시도하지조차 않는 사람이야. 그들은 자네에게 질문을 던지는 한편, 스스로의 지적 여정에 오른 자네를 인도하여, 자네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상기하지는 못하는 답변을 자네가 찾아낼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단순한 교수법만을 수행할 뿐이지. -2부 「타고나서 쿨한 걸까, 배워서 쿨해지는 걸까」, 115쪽

논의를 시작하면서, 저는 선과 악의 구분을 당신께 물어보았지요. 당신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선한 행동이란 하느님이 사랑하시거나 승인하시는 것이고, 나쁜 행동이란 하느님이 사랑하시거나 승인하시지 않는 것이다. 저는 하느님이 사랑하시거나 승인하시지 않는 것을 우리가 추측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지요. …… 곧이어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여쭤 보았습니다. 하느님이 선한 행동을 사랑하시는 까닭은 그 행동이 선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어디까지나 하느님이 선한 행동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행동이 선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냐구요. 우리는 이 문제를 논의하다 말았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제 원래의 답변으로 돌아가 버렸군요.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답변으로요. 기억하십니까? 앞서 우리는 선한 행동이 이른바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행동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정했었습니다. 당신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가만히 있는, 정말 보기 드문 재능을 보여 주신 셈이네요. -3부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할까, 아닐까」, 194~195

훌륭한 사람이 옳은 일을 할 때에는,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럴 때에 유일하게 타당한 판단 기준이 있다면, 그건 그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 여부일 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는 영웅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오로지 자기한테 직접적인 이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무릅쓴 바보들만 있을 것입니다. -4부 「일자리냐, 양심이냐」, 225쪽

이 나라나 이 학교처럼 크고 오래된 관료주의적 조직은, 워낙 크고 뚱뚱해서 거의 움직일 수조차도 없는 하마와도 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하마가 움직이도록 만들어 줄 무언가 또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런 존재가 없다면 이 하마는 계속해서 늪 속에서 아무런 하는 일 없이 물만 철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관료주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종의 쇠파리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계속해서 찌르고, 괴롭히고, 불평하고, 야단치고, 쟁점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비판적 분석을 가하고, 질문을 던지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려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쇠파리 노릇을 워낙 잘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저 말고 다른 적임자를 구하기가 쉬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쇠파리는 정말로 나오기가 힘드니까요. 이들은 예민하고 작은 곤충입니다. 없애 버리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쇠파리들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4부 「일자리냐, 양심이냐」, 231쪽

이런 철학적 논의와 숙고가 없어서 차마 성찰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그런 삶은 단지 몽유병에 불과하며, 행동 패턴의 자동적인 반복에 불과하고, 좀비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4부 「일자리냐, 양심이냐」, 246~247쪽

진리를 항상 연주되는 음악이라고 가정해 보세. 그 음악을 묻어 버리는 배경의 소음만 없다면 우리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걸세. 어쩌다 한 번씩 우리는 음악을 감지하지만, 그러자마자 신체가 곧바로 뭔가 더 요란하고 불쾌한 소음을 가지고 우리를 산만하게 만들어 버린다네. 이런 소음을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체를 침묵시키는 것인데, …… 철학은 영혼을 신체로부터 분리하고, 감각과 감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영혼에 정신을 집중하고, 결국에는 삶이라는 병상으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키는 거라네. -5부 「죽음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280~281쪽

논쟁이라는 것을, 진리를 향한 결말이 열린 탐구로 생각 …… 나는 반드시 조심해야만 한다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죽음에 직면한 상태에서, 이른바 기술적 토론자와 나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내가 내 논증의 진실성을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납득시키기를 원한다는 것뿐이니까. -5부 「죽음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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