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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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6.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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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철환 | 12,500원 | 2014-05-30 | 189쪽, 200x140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저작·역자 곽철환, 정가 12,500원
출간일 2014-05-30 분야 교리
책정보 189쪽, 200x140, ISBN : 97889747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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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불교 길라잡이], [시공 불교사전]의 저자 곽철환이 원고지 500매로 압축한 붓다의 가르침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불교 길라잡이]를 통해 오랫동안 불서를 기획, 집필해온 저자 곽철환 이 평생 마음에 품어온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에 대한 의문을 풀어낸 책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을 모아 단락을 만들고, 단락과 단락을 모아 한 편의 글이 되기까지 쓰고 읽고 다시 쓰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배우고 익히며 실천해온 부처님 가르침의 고갱이만 뽑아 담아냈다.
저자소개 위로
저자 곽철환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국역경원에서 10여 년 동안 일했다. 지금은 불교 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지은 책에 [불교 길라잡이], [시공 불교사전], [불교공부사전], [불교의 모든 것]이 있고, 옮긴 책에 [핵심 아함경], [금강경]이 있다.
목차 위로
머리글

왜 고(苦)인가?
생각과 에고의 그림자
고에서 열반으로 가는 4제(諦)
고가 일어나고 소멸하는 열두 과정, 12연기(緣起)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무상(無常)
에고와 경계가 소멸된 무아(無我)
온갖 분별이 끊어진 공(空)
열반으로 가는 세 가지 수행, 3학(學)
네 가지 알아차리기의 확립, 4염처(念處)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팟사나(vipassan?)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소멸된 열반(涅槃)
선(禪)
중생을 위한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자비희사(慈悲喜捨)
지금 이 순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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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위로
[불교 길라잡이], [시공 불교사전]의 저자 곽철환이
원고지 500매로 압축한 붓다의 가르침!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불교의 가르침이 방대함을 흔히 8만 4천 가지 경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만 해도 그 양이 엄청나다. 거기에 남방에서 보존해온 초기경전과 다양한 논서까지 더하면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르친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어떤 경전을 보더라도 그 대의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일까? 그 핵심이 무엇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무엇을 가르치셨을까?
불교 관련 서적이 많지 않던 때에 가뭄에 단비와 같았던 [불교 길라잡이](1995년)를 필두로 오랫동안 불서를 기획, 집필해온 저자 곽철환 선생이 평생 마음에 품어온 의문이 그것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 구절 한 구절을 모아 단락을 만들고, 단락과 단락을 모아 한 편의 글이 되기까지 쓰고 읽고 다시 쓰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당신이 배우고 익히며 실천해온 부처님 가르침의 고갱이를 정리했다. 그렇게 원고지 500매로 압축되어 나온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답변이다. 저자는 말한다. 불교는 자연과학처럼 바깥 대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는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내관(內觀)으로, 고(苦)에서 열반(涅槃)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지각, 생각, 영상(映像, image), 감정 등이 어떻게 고(苦)를 일으키는지를 통찰하여 평온한 열반(涅槃)을 얻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불교이다.
우리는 바깥 대상을 지각할 때,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고 온갖 생각과 감정, 선입관 등으로 덕지덕지 채색하여 지각한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의 일로 갖가지 상상을 떠올려 얽매이고 집착한다. 에고(ego)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마음은 ‘나 / 나 아닌 것’으로 갈라지고, 생존에 ‘유리하다 / 불리하다’로 갈라지고, ‘기분 좋다 / 기분 나쁘다’로 갈라지면서 둘로 나뉜 온갖 생각과 감정이 잇달아 일어나 그 양쪽을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므로 온갖 불안과 갈등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불교는 무엇을 ‘아는’ 공부가 아니라 무엇이 ‘되는’ 공부
부질없는 마음의 소음을 버리고 청소하면 될 뿐!

우리가 궁극에 도달해야 하는 열반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소멸된 상태이다. 중생의 탐욕이 끝없는 건, 에고의 속성이 ‘부족감’이어서 결코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분노는 ‘저항’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저항이고, 오고 가는 인연을 거스르는 저항이고, 허망한 에고에 상처를 받아서 치솟는 저항이다. 어리석음은 자신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매사에 얼마나 잘 분노하는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반으로 가는 길에 복잡한 교리 따위는 필요 없다. 에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은 자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온갖 헛된 생각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모두 에고에 대한 집착이 불러일으키는 망상일 뿐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마음은 결코 내 뜻대로 쉬이 평안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마음의 재잘거림은 불교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서 잦아드는 게 아니다. ‘앎’이 곧 ‘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앎’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음 가득한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을 청소할 줄 알면 될 뿐이다.
‘이 책은 어떻게 마음을 청소할 것인가에 대한 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불교를 배우는 목적은 단지 이런저런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마음의 작용을 파헤치는 복잡한 교리에 몰두하기보다 고(苦)의 원인을 바로 살펴서 고(苦)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실천하여 안심(安心)을 자주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에고(ego)’가 어떻게 고통을 일으키는지, 먼저 고(苦)의 정체를 바로 알면 고에서 벗어나는 길도 보이는 법이다. 불교는 결코 삶에서 유리된 것이 아니다.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사바세계의 뭇 존재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책속으로 위로
‘부족감’은 에고(ego)의 속성이어서 결코 만족을 모른다. 채우면 채울수록 모자라고 채우는 순간 결핍이 나타난다. 삶이 늘 갈등에 휘둘리는 이유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생각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끝없이 긴장하고, 불안하고, 계속 움직인다. 중생의 욕망이 끝없는 건 아무리 많이 가지더라도 그것으로 생존의 불안감과 괴로움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이젠 됐다.’ 하고 느긋해진다 해도 그 다음에 더 큰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 왜 고인가? 13~14쪽

중생의 마음은 ‘좋다/싫다’, ‘즐겁다/괴롭다’, ‘아름답다/추하다’ 등, 그 2분의 한쪽에 집착하고 다른 한쪽을 회피하며 마치 시계의 추처럼 끊임없이 왕복한다. 집착과 회피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그 왕복 운동의 진폭이 커져 더 큰 불안정에 휘둘린다. 집착한다고 해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회피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 집착한다거나 회피한다는 건 거기에 속박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불안정하고, 얽매이고, 불안하다. 이러한 마음 상태가 곧 고(苦)이다.
따라서 일체행고(一切行苦)이다.
이게 바로 고타마 붓다가 간파한 근원적 통찰이다.
- 왜 고인가? 15쪽

생각을 정리하려거나 줄이려면 생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관조(觀照)해서 그 감정의 2분법에 둔해져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현상을 대하더라도 너무 민감하게 분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거다. 이게 단순하고 편하게 사는 길이다.
따라서 복잡한 불교 교리 따위는 필요 없다. 다만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을 청소할 줄만 알면 된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생존의 유지와 안전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일어나는 불안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몸-마음’에 집착하고 애착하면 할수록 그 생각과 감정이 자주 찾아온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의 내용은 대부분 저항이다. 저항이 곧 분노이고 스트레스다.
- 생각과 에고의 그림자 21~22쪽

에고가 강한 사람일수록 생각이 많다. 왜냐하면 과거의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에고가 손상되지 않았는지를 점검하느라 노심초사하고, 미래에 자신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생각이 과거와 미래로 떠돌기 때문이다.
그럼 왜 에고를 버리지 못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에고의 약화가 생존에 불리하다고 착각해서 에고를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에고에 상처를 받으면 ‘기분이 나빠서’ 그 에고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상처를 입으면 자신의 삶이 비참해지고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기분 좋은 것’을 추구하고, 기분에 좌지우지되는 비합리적인 감정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에고가 실은 괴로움과 불안과 갈등의 뿌리여서 삶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절실히 자각하지 못하면 억겁을 불교 공부해도 말짱 헛일이다. 게다가 에고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한, 지혜와 자비의 싹은 결코 돋아나지 않는다. 지혜와 자비가 없는 불교는 관념과 의식(儀式)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자아 없는 지혜, 자아 없는 자비’가 불교의 심장이다.
- 생각과 에고의 그림자 37~38쪽

괴로움의 발생은 부정적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에 대한 ‘집착’이다. 생각은 현실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허상일 뿐이다. 어떤 생각에 집착하는 한, 거기에 얽매이고 민감해져 그 생각에 휘둘리게 된다.
갈애가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한 발짝 물러서서 내려놓기를 반복해야 한다. 갈애가 일어날 때마다 내려놓기를 반복해 나가면 갈애는 점점 약화된다. 그러므로 일어나는 갈애를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집제(集諦)의 요점이다.
- 고에서 열반으로 가는 4제(諦),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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