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수행 대중화를 위한 방편 모색
상태바
불교수행 대중화를 위한 방편 모색
  • 관리자
  • 승인 2007.08.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강 창간 23주년 특별좌담

일시

 불기 2541년 10월 8일 오전

장소

  서울 안국동 국제연등불교회관

좌담에 참여하신 분들

 원명스님/국제연등불교선원장

 김희균/월간 『대중불교』주간

 사회 및 원고정리 남동화

사회자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바쁘신 가운데 자리를 함께 해주신 데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호는 저희 월간불광이 창간된 지 23주년이 되는 기념호입니다.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위해 절박하고도 필요한 문제를 들추어내다 보니까 ‘불교수행의 대중화를 위한 방편모색’라는 주제를 이끌어 내게 되었습니다.

  불교은 깨달음의 종교, 수행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수행에 대한 관심은 확산되고 있는데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그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면 밝혀보고, 가능하다고 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불교수행의 대중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해주신 스님과 두 분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불교수행의 대중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오면서 오랜 동안 수행해 오시고,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체험하고 부딪쳐 왔던 경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자연히 우리들이 이르고자 하는 결론에도 어느 정도 도달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스님께서 불교수행이란 무엇이며 왜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원명: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 자신은 누구인지, 왜 이렇게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설령 이러한 의문을 잦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모든이들의 궁금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존재근원에 대해 탐구해 들어가는 것이 참선이고 수행입니다. 불광에서도 늘 말해오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생명이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임을 밝혀보는 것이지요. 무아(無我), 무심(無心), 오매일여의 지고체험을 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선이요, 수행입니다. 자기 자신과 우주가 하나 되어 이 우주의 주인공으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불교수행의 요체입니다.

사회자: 김희균 주간님께서는 그 동안 여러 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해보시고 또 많은 분들을 만나보셨지요. 불교수행의 현황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김희균 : 불법에 귀의하고 불교를 공부하고 ‘아 절말 부처님 말씀대로 살면 되겠구나’ 싶어 갖가지 수행을 해보지만 번뇌망상이 정진을 방해하고, 번뇌를 떨쳐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번뇌는 더해진다고 합니다. 특히 재가불자의 경우에는 수행에는 전념할 수 없고, 아쉬움을 가진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결과적으로 중도에 좌절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불교수행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수행을 지도하는 단체들도 늘고 있다는 것은 다행 한 일입니다. 현재 행해지는 수행법에는 선(禪), 염불(염송), 독경, 사경, 만트라(다라니, 주력) 절(예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한국불교수행의 전통은 선이고 그 중 간회선이라고 알고 있지요.

  그런데 일반 재가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칫 이러한 방법들이 방만하고 체계가 없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일상생활을 하는 일반 불자들이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수행을 계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특히 간화선의 경우는 화두를 던져주고 깨쳐보라 하니 보통 근기의 사람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수행을 다 해보신 스님이나 법사가 오는 사람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주고 꾸준히 점검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그러한 곳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가르치는 분들이 다 각각입니다. 참선을 하시는 스님은 주로 참선만 하라고 하고 기도하는 스님은 기도를, 그리고 교학하시는 스님는 교학을, 염불하시는 스님은 염불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 배우는 입장에서는 혼선이 올 수밖에 없어요.

김열권: 우리나라 불교가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아왔고, 대승경전과 조사스님들의 어록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자연 초기 경전 특히 아함경에서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 부족합니다. 사제팔정도 십이연기 중도 계정혜에 대한 가르침이 근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불교가 전래된 지 1600여 년이 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고, 어떻게 제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하셨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대개 우리 불교의 선 수행 방법을 보면 유교 불교 도교의 수행방법이 접합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구분이 안 되고 있어요. 심지어는 불교의 수행법이라고 하는데 힌두교의 수행과 혼돈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다보면 그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나요.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견(正見)을 습득해야지요. 성철 큰스님의 백일법문에서도 자주 말씀하시고 계신데 아함경을 중심으로 우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분명히 이해하고 수행을시작하며 틀림이 없어요. 대승경전의 말씀도 사실은 아함경 안에 다 있어요. 부처님의 말씀이 원형 그대로 쓰여 있는 것이 아함경이지요.

  중국 선종의 영향으로 수행법이 화두 참구법에만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화두 참구법의 뿌리도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법인 위빠싸나(慧觀 Vipassana)에 뿌리가 있다고 봅니다. 불교의 모든 수행은 반야에 의지하지요. 불교와 타종교나 타수행법과의 극명한 차이는 반야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어요. 반야의 실상을 보았을 때 중도, 연기가 드러나고, 모든 수행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요, 위빠싸나 수련은 처음부터 반야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호흡과 관련된 물질을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로 관찰하여 그 본질인 공(空)의 자리로 회귀하여 자성을 철견하는 것입이다. 모든 수행은 정(定)과 혜(慧)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견(定見)에 입각한 정혜쌍수(定慧雙修)가 되어야지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