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 사르는 칼]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듯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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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 사르는 칼]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듯싶을 때
  • 박재현
  • 승인 2017.01.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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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 봐도 결국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 그때는 정말 어찌해야 하는가. 유일하게 기댈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때. 그다음엔 도대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이런 심정을 표현하는 한자어가 ‘패궐敗闕’이다. 서장書狀』에 보면, 증시랑曾侍郞으로 불린 인물이 간화선의 종장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편지에서 그는, 부처의 법을 익히고 싶었지만, 세상일에 치여 결국 그러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내 한평생 다 버렸다’는 뜻으로 일생패궐一生敗闕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생패궐이라는 좀 섬뜩한 용어가 최근에 다시 등장했다. 불교서적 전문출판사인 민족사 대표 윤창화 선생이 ‘일생패궐’이라는 제목이 적힌 문서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다. 선생은 방한암(方漢岩, 1876~1951) 스님이 이 글을 짓고 그의 제자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이 필사한 것으로 추측했다. 한지에 만년필로 필사된 이 글은 정작 탄허 스님의 유품이나 소장품에는 없고, 그와 동문수학한 사형인 보문 스님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문 스님 입적 이후에는 전 통도사 주지 초우 스님이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는 강원도 월정사 박물관에 기증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한암은 김천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를 처음 만났다. 당시 경허는 52세였고, 한암은 겨우 20대 초반이었다. 수도암은 땅보다 하늘이 가까웠고, 동쪽으로는 가야산, 서쪽으로는 덕유산과 어깨를 나란히 걸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찰이다. 중후한 맞배지붕의 건물 속에 들어앉은 화강암 석불이 인상적인 곳이다.

수도암에서 경허로부터 전해들은 금강경』의 한 구절은 한암의 가슴을 후려쳤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흔해 빠진 한마디에, 내내 꾸려 왔던 한암의 살림살이는 거덜 났다. 그즈음에 한암의 심경은 ‘일생패궐’ 문서에 기록된 내용에 솔직하게 드러난다. 두 사람 사이에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한암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떻게 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까?”

경허 화상이 대답했다.

“화두를 들어서 계속 참구해 가면 끝내는 깨닫게 되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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