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방랑기] 전남 화순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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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방랑기] 전남 화순 운주사
  • 이광이
  • 승인 2016.03.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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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천불천탑, 그토록 간절했던 열망은 무엇이었을까

운주사는 기억을 잃어버린 절이다. 야트막한 산의 평평한 골짜기를 따라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석불과 석탑들은 천년의 세월 동안 묵언 중이다. 말이 없으니, 개똥이 아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 돌은 누구이고, 왜 거기 서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돌들이 그렇게 서 있음으로 해서, 아득한 옛날 어떤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은 전해 온다. 세상 일이 대체로 모르는 것 투성이다. 나는 누구인지, 어느 바람결에 왔다 가는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저 돌의 사연을 어찌 알까? 오직 저 돌이 왜 저기 서 있을까, 옛 사람들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열망은 무엇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분명할 뿐. 그것 하나로 운주사 여행의 준비는 충분하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원구형圓球形 석탑. 밥그릇을 쌓아 놓은 독특한 모습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다. 1910년대 사진에는 7층인데 지금은 4층이다. 운주사 탑은 초입 구층석탑에서 여기까지 20여기가 남아 있다. 정림사지 석탑처럼 지붕돌 경사가 완만하고 처마가 말려 올라간 백제형 탑도 있고, 감은사지 석탑처럼 지붕돌이 육중하고 경사가 급한 신라형 석탑도 있다. 석조불감 앞에는 호떡을 포개 놓은 듯한 원형석탑이 서 있다. 탑의 지붕돌이 사각 방형方形에서 둥근 원형圓形으로 바뀐 것이다. 더 올라가면 그것이 구형으로 나타난다. 탑은 한 층이 집처럼, 지붕돌과 몸돌로 쌓아 올라가는데, 원구형은 지붕과 몸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탑은 사각형에서 원판형으로, 다시 원구형으로, 직선은 곡선이 되고, 곡선은 원이 되고, 원圓은 구球로 변화하는 것이다. 달덩이 같은 탑신을 쌓아 올라간다는 것, 그것은 정형을 무너뜨린 파격이고, 걸림이 없는 자유로움이다. 둥근 것, 그것은 원융圓融한 세상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신비로운 운주사에서 분명한 것은 동시대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다. 천불천탑은 귀족불교였던 고려의 찬란하고 정교한 아름다움과 확연히 구분된다. 투박하고, 못나고, 단순하고, 볼품도 없고, 장식도 없고, 위엄도 없는, 하지만 그래서 고향처럼 정겹고 반가운 돌의 형상들. 거기서 공통으로 읽히는 것은 하나의 열망이다. 시대의 권력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시대의 부조리를 변혁시키고 싶은 희망처럼 그렇게 커다란 것이었는지, 민중의 삶을 좀 나아지게 하고,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비는 소박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변방의 집단적 열망이 거기 충만했을 것이라는 느낌은 전해져 온다.

전남 해남에서 1963년 태어났다. 조선대, 서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산과 절이 좋아 늘 돌아다녔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을 하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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