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너머] 바람 속에 봄이 묻어오는 달, 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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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너머] 바람 속에 봄이 묻어오는 달, 이월
  • 최원형
  • 승인 2016.03.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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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소장

언제부터인가 새해를 코앞에 둔 섣달그믐을 즈음해서 흩어져 살던 내 혈육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 혹은 이틀을 같이 보내는 게 연례행사처럼 돼 버렸다. 해마다 비슷한 레퍼토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도 마냥 재밌기만 한 짧은 시간이다. 그 이야기보따리 속엔 어린 내가 있고 젊은 부모가 있다. 내 아이들보다 훨씬 어린 언니도 있다. 우리가 살던 동네가 있고, 그 동네에는 형편이 어렵던 사람들과 꽤 넉넉했던 사람들이 한데 섞여 복닥거리며 살고 있다. 어느 집의 슬픔에 동네 전체가 슬펐다.

그리고 몇 백 년 된 느티나무조차 우리 이웃이었다. 이야기보따리에는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바뀐다. 나였다가, 너였다가 그리고 마무리는 항상 우리였다. 우리 공동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 시간들은 같은 인물, 사건, 장소지만 각자에게 서로 달리 기억되고 있다. 낱낱의 퍼즐을 맞추다보면 언제나 새로운 해석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뻔히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고 나누어도 늘 새롭고 재미난 게 아닌가 싶다.

올해엔 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친정어머니와 열세 살 터울 지는 막내 외삼촌이 합류해서 또 다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평생 유학자로 사셨던 외할아버지가 뜻밖에도 가을이면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드셨다 한다. 그런데 곶감이 되기 전 말랑거리며 마르기 시작할 무렵의 감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단다. 해서 삼촌은 그걸 표 안 나게 빼먹다가 외할아버지에게 들켜 아주 단단히 혼이 나곤 했다는 얘기였다.

그 얘길 듣던 우린 어차피 가족들이 먹을 건데 왜 혼을 내셨을까 의아해했는데 그 당시 수입이 없던 외할아버지에게 곶감 장만은 식솔들 입에 풀칠할 벌이였다 했다. 삼촌 얘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의 이야기로 간단히 듣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작년에 함양에서 곶감 농사를 짓던 농부 아무개 씨의 자살 소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리산 함양의 대표 특산품 중 하나가 곶감이다. 그런데 벌써 5년째 따뜻한 날씨 탓에 해마다 곶감 농사를 망치고 있다. 5년 전에는 11월초에 감을 깎았는데 날씨가 하도 따뜻해서 11월 중순으로 감 깎는 시기를 늦췄는데도 2015년 11월은 내내 따뜻했다. 말리려 달아 놓은 감에 곰팡이가 피고 홍시가 되어 바닥에 떨어지면서 곶감 농사를 망친 농가가 한두 곳이 아니다. 급기야 생각해 낸 것이 건조기였다. 찬바람에 꾸둑꾸둑 마르며 곶감이 되던 시절은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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