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사람] 싯다르타를 보는 정신분석가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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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사람] 싯다르타를 보는 정신분석가의 눈
  • 하정혜
  • 승인 2015.11.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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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 숲’ 이승욱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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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 ‘사도’를 봤거든요. 좀 특이하게 다뤄진 영화죠. 감정선들이 드러나요. 아버지, 인간으로서의 영조. 정치적으로 대의명분이야 있었겠지만, 영조는 자식을 죽이는, 굉장히 극단적인 행위를 했어요. 이게 지금 한국사회 모습하고 똑같아요. 부모들이 애들을 죽이죠, 다들, 정신적으로. 그걸 대의명분으로 포장하죠. 흔한 이 시대 아버지가 영화 ‘사도’에서 보였어요. 싯다르타는 안 느꼈을까요? 저는, 싯다르타가 그거 느꼈을 거 같거든요. 저 늙은이, 지겹다, … …, 와, 미치겠다.”
 
 
싯다르타는 아버지 때문에 출가했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음악교사를 그만두고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가가 됐다. 낯선 땅에서 공부하는 동안 매일 밤 108배와 불경 읽기를 3천 일 동안 했다. 10년 간 정신분석가로 일한 뉴질랜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대한민국 부모』(공저), 『애완의 시대』(공저), 『상처 떠나보내기』, 『포기하는 용기』, 『마음의 연대』를 냈다. 그의 팟캐스트 ‘공공상담소’에 지난 여름, ‘싯다르타에서 붓다까지’ 시리즈가 연재됐다. 10회에 걸쳐 탄생과 출가, 구도와 정각까지 정신분석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 숲’ 이승욱 소장이다. 팟캐스트라는, 아직은 그 파급력이 제한적이지만,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인간 싯다르타’를 말하고 있는 이승욱 소장을 직접 만났다.
 
경복궁 옆 서촌에서 그의 클리닉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닛부타의 숲’이라는 작은 나무간판이 한옥 안채 벽에 걸려 있다.(닛부타는 ‘열반적정 상태의 청량감’을 의미한다.) 밖에서 보기엔 일반가정집과 다를 바 없이 꾸며져 있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식탁에 마주앉았다. 이승욱 소장은 영화 ‘사도’를 이야기했다. 숫도다나와 싯다르타를 설명하려는 의도다. 팟캐스트에서 그는 싯다르타의 아버지 숫도다나 왕을 역사상 최초의 ‘컬링 부모’라고 말한다. 컬링 부모는 자녀의 인생경로에 장애물이 될 만한 것을 미리 치워준다. 숫도다나 왕은 ‘고통과의 접촉을 막는 최선의 방지책들을 최대로 사용’했다. 아들이 붓다가 아닌 전륜성왕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엄청났죠. 여름 왕궁에서 겨울 왕궁으로 옮길 때는 길가에 있는 사람들 다 치워버리고, 병든 사람이나 주검을 못 보게 만들고. 철저하게 가둬놓고 키웠잖아요. 그동안에 싯다르타가 생로병사는 못 봤더라도, 왕궁 내 다툼이라든지, 치졸하고도 더러운 권력놀음을 수없이 봤겠죠. 인간들은 참…, 끝이 없이 저렇게 하겠구나, 생각했겠죠. 그런 삶을 살다가 스무 살이 넘어서 생로병사를 보고나서, 아마 혼자서 이렇게 읊조렸을 겁니다. ‘죽는다는 게 뭐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데.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데. 저 사람들은 자기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안다면 왜 남도 괴롭게 하고, 자기도 괴로움에 빠져 사는 거지?’ 그러니까, 싯다르타는 삶이 궁금했겠죠. 욕망이 궁금했겠죠.”
 
- 생로병사 때문에 출가했다는 말은 오독의 소지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병들고 죽는 것을 어떻게 피해볼까, 그게 아니라 죽는데도 저런 삶을 살다니, 라고 하는 전혀 다른 맥락이네요.
 
“짐작컨대 최고의 음식을 먹었을 거고, 최고의 미녀들과 언제든지 육체적인 쾌락을 누릴 수 있었을 테고, 끊임없는 권력다툼, 그걸 일상으로 봤던 사람이 생로병사를 알고 나서 말합니다. ‘소멸의 전망이 이렇게도 분명한데 어찌 저럴 수 있는가.’ 그런데 그 욕망이요, 자기한테도 있거든요. 괴로운 건, 자기한테 가장 많은 거죠. 그렇게 주어졌죠. 아버지의 기대, 요구, 욕망, 부족의 기대, 이런 것들이 이 사람한테 집중됐겠죠. 아마, 이대로 살면 내가 자기自己로는 못 살겠다 싶었을 것 같아요. 세상의 군주, 그게 자기는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이 원하는,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일 뿐이지. 자기는 아니죠.”
 
- 아버지의 존재를 출가동기로 보는 관점인데, 어머니의 부재를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크 엡스타인은 『트라우마 사용 설명서』에서 싯다르타의 구도과정을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 본인의 연약함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보죠. 
 
“어머니는 상징화된 대상이에요. 어머니가 안 계셔도 외할머니나 이모가 지극정성으로 키웠다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재로 인한 상실감은 없죠. 싯다르타는 어머니 사후에 이모가굉장히 지극정성으로 키웠고, 얼마나 건강하게 애착이 이뤄졌느냐, 그 부분 의심하지 않거든요. 어머니의 부재가 트라우마가 되려면 이 사람의 삶에 계속해서 상흔을 남겨야 해요. 밥을 굶었다든지, 눈치를 봤다든지. 어머니의 부재를 계속 상기시키고 상실감을 에스컬레이팅해야 하죠. 싯다르타에게 그런 실질적인 상흔이 있었을까요? 마크 엡스타인에게 일견 동의되는 부분이 있지만, 좀 과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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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완전히 열린 감각의 획득
 
이승욱 소장의 팟캐스트에는 대본이 없다. 간단한 메모를 놓고 20분 정도 이야기를 풀어간다. 첫 번째 에피소드 ‘출가’ 편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29년 간 익숙했던 경험으로부터의 이별이라는 결정. 얼마나 어렵기도 하고, 얼마나 쉽기도 했을까. … …. 한편으로, 그는 왜 꼭 떠나야만 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완전한 분리죠. 엄밀히 말하면 자기 것이 아닌 모든 것, 권위, 힘, 보호막, 모든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개인이 되는 것. 수많은 보호막이 제거된, 완전히 연약한 상태에서 어떤 것도 외부로부터 구하지 않겠다는,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 속에서 그가 획득하려 한 것은 완전히 열린 감각이었을 겁니다.” 깨달음을 지칭하는 낯선 언어가 등장한다. 독특한 표현이다.
 
- 팟캐스트에서 말한 ‘완전히 열린 감각’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깨어있음, 그걸 좀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합니다. 내가 하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는 건, 저는 그게 열려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기법이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거잖아요. 그물코 중에 하나를 들어 올려도 그물이 다 딸려 올라와야 되는 거잖아요. 자기에게만 집중하면 그물은 안 오고 그물코 하나만 떨어져 나오겠죠. 모든 것을 다 감각한다는 건 그런 거죠, 연결돼 있다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세상,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가없는 연민. 그건 끝없는 연민이라기보다 경계 없는 연민이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문턱도, 걸림도 없는, 왜곡 없는, 굴절 없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
 
- 그런, 열리는 경험은 어떤 변화일까요?
 
“교황이 한국방문 때 한 말 중에 꽤 괜찮은 말이 있어요. ‘고통에 중립은 없다.’ 고통에 중립이나 좌나 우가 있나요, 고통은 고통이죠. 기쁨도 기쁨이죠. 붓다가 깨닫고 난 다음에 더 많이 느끼고, 더 잘 느끼고, 더 깊게 느끼고, 모든 것을 다 느끼고, 그랬을 것 같거든요, 기쁨도 고통도. 단지 그 균형점을 잃지 않았겠죠.”
 
균형점을 잃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는 경험을 주는 것, 정신분석가의 역할이기도 하다. 상담이나 정신분석에서 내담자와 상담자가 의존적인 관계가 된다는 시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은 그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존해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인간이 어떻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되물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 표피적으로 해석되는 오류를 지적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 수많은 말들이 있을 텐데, 왜 이 말을 탄생설화로 만들어놓았을까. 이때의 ‘나’는 ‘모든 나’죠. 3인칭이 아닌 1인칭, 모든 자기 자신. 모든 나는 오직 천지사방에 하나밖에 없다는 거죠. 싯다르타의 탄생과 나의 탄생이 한 점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뜻이죠.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의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통해 의존이라는 경험을 해봐야 해요. 부모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부모한테 그런 확신을 얻기는 쉽지 않죠.(웃음) 뭔가를 확신한다고 하는 건, 세상엔 확신이라는 게 있다는 것, 신뢰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신뢰라는 게 있다는 걸 신뢰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죠. 상담자는 내담자가 통찰의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입니다. 자기 욕망이나 견해를 이입시키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해요. 종교적인 의존 관계도 그렇죠.”
 
- 지금까지 천착해오신 과정도,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회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분한 표현이고요, 이런 거예요. 교보문고에 가면 책, 많잖아요. 이를테면 저도 책 한 권 만들어서 거기다 꽂아둔 거죠. 제가 만든 팟캐스트든 책이든. 사람들은 제 책을 꺼내서 첫 페이지 펴서 읽고 닫을 수도 있고, 끝까지 읽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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