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과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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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식과 무게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6.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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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기 어려운 일
어릴 적, 어머니는 내게 불만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 진작 알았다. 아버지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우리 집 말썽쟁이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아버지. 가족을 힘들게 한 분이셨지만, 유일하게 단 한 가지, 내가 그분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다. 

사나이 중이 사나이였던 아버지는 병고로 돌아가실 즈음까지 앓아누웠던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셨다. 그런데 내가 아주 어릴 적,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쓰러진 일이 있었다. 아랫집 할머니가 염소들 풀 먹이러 우리 집 앞산에 올라갔다가 독사에게 물렸는데,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간 아버지가 허리띠를 풀어 할머니 다리를 묶어 응급처치를 하고, 물린 곳을 입으로 빨아 독을 뽑아낸 후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응급처치 덕분에 할머니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고, 금세 회복해 퇴원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며칠 동안 퉁퉁 부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계셨다. 병원처방을 받고도 이주쯤 지나서야 겨우 회복세를 보였다. 서울 산다는 아랫집 할머니 자식들이 줄줄이 내려와 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명절 때마다 우리 집에 인사를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차례 고개를 조아리는 손님들을 보며 아버지 곁에서 나는 마냥 우쭐해졌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집에 찾아온 동네 사람들도 걸핏하면 그 얘기를 꺼내며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곤 했다. 허풍이 심하면 심했지 결코 겸손하지 않은 아버지인데도, 그 칭찬 앞에서만큼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노릇을 하며 살다보니 그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기 어려운 일들 말이다. 남을 돕는 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원칙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수록 당연한 일들이 때론 더 어려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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