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어 보이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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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어 보이는 산
  • 만우 스님
  • 승인 2015.03.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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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린포체(수미산) 가는 길 – 셋

발목 잡은 눈에 생각도 잡힌다. 어디쯤 왔을까. 가쁜 숨이 시간을 꺼내보고 공간을 재본다. 얼마나 왔을까 얼마나 남았을까 눈이 깊어져 걸음이 느려지니 생각이 바쁘다. 뒤를 돌아다보니 발자국은 어지럽고 야크의 방울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앞을 바라다본다. 오늘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다. 둘러봐도 처음길이니 멀기만 하고 가야할 길이니 길기만 하다.

| 두 뼘의 이정표

우주의 중심인 크기를 알 수 없고 넓이를 알 수 없는 산에서 나를 인도하는 것은 작은 발자국이다.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눈에 덮여 길은 사라졌다. 앞서 간 사람들의 두 뼘 남짓한 발자국이 이정표다. 나의 시선은 온통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발자국들을 따라가야 오늘 밤 머물 곳을 찾을 수 있고 비로소 눈을 들어 산을 찾을 수 있다. 이 숭엄하고 지고한 산에 들어와 부동不動의 마음자리를 조금이나마 감득感得하려 했는데 마음은 눈가루처럼 흩날리어 좀처럼 모아지지 않는다. 야크 떼들은 여유롭게 내려갔는지 더 이상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산을 간찰看察할 여유는 사라졌고 조급한 마음이 시야를 더 흐리게 한다. 두 뼘의 공간-발자국에 다시 시선을 모아 걸음을 옮긴다.

참 미욱한 순례자다. 산에서 산을 잃고 길에서 길을 헤맨다. 사람의 몸, 약하고 마음, 허술하다.

멀리 겹겹이 타르쵸로 치장한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색의 깃발이 백색의 설원에 대비되어 더욱 화려하게 돋보인다. 눈은 그쳤지만 강 린포체는 아직 구름에 쌓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밀라레빠의 노랫말처럼 온 세상 설산의 제왕이고 지순하고 흠 없는 붓다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강 린포체는 구름과 안개 속에 잠겨있어 그 위용을 오늘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다리를 건너니 오늘의 목적지인 시멘트 벽돌로 지은, 규모는 작지 않은 이층짜리 숙소가 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야크처럼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발자국만 보고 걸었던 눈이 비로소 주위 풍경을 간별看別한다. 먼저 출발한 짐을 실은 야크와 말들이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개울건너 디라푹 곰빠가 숙소와 마주보고 있다. 이제 눈은 거의 무릎 높이까지 쌓여있다. 겨우 숙소에 닿아 짐을 풀고 차를 마시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강 린포체는 아직 안개와 구름에 가려져 있다.

이번 순례의 안내자인 조선족 가이드 둘이 저녁을 준비한다. 티베트에서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족이다. 이미 티베트는 서장 자치구로 편입되어 모든 행정, 교육체계가 중국화 되었기 때문에 티베트어를 몰라도 티베트에서 살아가는데 별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이 조선족 가이드들도 티베트어를 전혀 모른다. 십년을 살았다는데 티베트어를 모르니 아는 게 별로 없고 한국어로 된 티베트에 관한 책자를 몇 권 읽은 것이 티베트에 관한 상식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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