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전면 개방과 한국 쌀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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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 전면 개방과 한국 쌀의 생존전략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2.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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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쌀 시장 전면 개방,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쌀 시장 전면 개방의 배경과 해외의 사례
그것이 바로 최소시장접근방식(Minimum Market Access, MMA)이다. MMA는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 이하 UR)에서 확립된 시장개방원칙 중 하나로, 일부 품목에 대해 시장 개방을 제한하면 관세화 개방을 이행할 때까지 국내소비량에 대한 일정 부분을 반드시 수입하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한국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WTO가 시작되는 1995년에 국내 쌀 소비량의 1%를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이어 매년 0.25%씩 추가해 2004년까지 의무수입량을 4%로 확대한다는 조건으로 쌀 시장 개방을 유예했다. 정부는 협정 당시 그 정도의 조건들은 감수하기로 하고 조약을 체결했고, 2004년 도하개발아젠다(Doha Development Agenda, DDA) 농업협상을 거쳐 관세화 개방을 10년 더 유예하게 됐다.
 
20년의 유예 기간 동안 의무수입량은 눈덩이처럼 불어 국내 소비량의 8%에 다다르게 됐고 이제는 더 이상 수입량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협약의 내용 때문에 국산 쌀이 남아돌아도 매년 40만 톤 이상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고, 관세화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매년 0.25%씩 추가되어 앞으로는 더 많은 양의 쌀을 수입해야 한다. 결국 선진국들이 쳐놓은 그물에 갇혀 백기를 든 것이다. 

글로벌화 자유무역체제로 들어가는 세계정세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8년여에 걸친 UR 협상 기간 동안 해외 선진국들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전통적으로 곡물 수입국이었던 영국과 독일은 이 기간 동안 곡물 자급을 실현했으며, 곡물자급률이 30%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하던 일본은 UR 협상을 시작하면서부터 곡물자급률을 높이는 일에 거국적인 노력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80년 54%였던 곡물자급률이 1985년에는 48%, 1990년에 40%로 감소했고, UR 협상이 타결된 1995년에는 곡물자급률이 28%로 하락했다. UR 협상 8년 동안 농수산부 담당 국장이 7번 바뀌었으며 서기관과 사무관도 2년 이상 담당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공무원 순환보직제도의 틀에 갇혀 아무도 UR 협상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지 못해 대처 방안을 수립할 수 없었다. 우리는 20년 동안 쌀 시장을 개방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을 가지고 논란을 거듭했을 뿐 쌀 시장 개방을 대비한 준비나 전략 개발에 소홀했다. 이제 더 이상 의무수입량을 버틸 수 없어 개방은 하지만 벼랑 끝에 와서 아무 대책 없이 서 있는 우리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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