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묻다] 다시 돌아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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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묻다] 다시 돌아올 길
  • 만우 스님
  • 승인 2014.12.30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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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앉고 함께 가도 세상은 몰라         共坐同行世莫知

몇 사람이나 문득 그대를 만났던가       幾人當面便逢伊

보고 듣는 그 자리 본래 분명하니         俯仰視聽曾不昧

어찌 밖을 향해 그대 갈 곳 묻는가        何須向外問渠歸

- 소요逍遙 스님

 

새벽공기가 매섭다. 짐을 꾸리고 텐트를 걷는다. 평소보다 두 시간쯤 일찍 갈 길을 서두른다. 차 한 잔, 여유가 감돈다. 의식이 천천히 제 자리를 찾는다. 멀리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설산이 아침 햇살에 생기가 돈다. 햇빛은 고봉에 먼저 앉아 점점 낮은 곳으로 번진다. 이 자리까지 당도하려면 한참 걸리겠다. 햇살이 오기 전에 길을 나선다. 올려다보니 멀리 햇살이 내려오고 있다. 가파른 길. 햇빛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잠시 숨을 고른다. 문득 햇살이 무심히 나를 지나친다. 따뜻하다. 순한 마음이 인다. 몸이 가벼워진다. 밖에서 오는 빛에 마음이 밝아지니 밖을 향해 갈 길을 물어도 되겠다.

 

|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할 때 랑탕계곡을 거쳐 강자라(5,130m)를 넘는 코스를 걸었다. 야크존의 운영자인 대원 스님이 선택한 이 코스는 아직 한국사람 중에는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이라고 했다. 가이드도 이 길은 초행이었고, 다행히 포터 가운데 강자라를 넘어본 경험자가 있어 길잡이 노릇을 했다. 길은 험했다. 급경사의 잡목과 초지를 통과하니 너덜바위지대가 펼쳐져 있다. 황량하다. 여기서부터 길은 따로 없다. 멀리 강자라를 기준으로 가늠해서 걸을 뿐이다. 기준점이 있으니 헤매지는 않겠다. 눈을 녹여 요리팀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멀리 설산과 눈을 맞춘다. 이제 강자라를 넘으면 며칠 사이 친숙해진 이 풍경과도 이별이리라. 랑탕리룽(7,225m), 체르고리(4,984m), 나야강가(5,844m) 등 제법 익숙해진 산봉우리 이름들도 멀어지고 강진 곰파에서 밤새 잠 못 들게 했던 야크와 말들의 방울소리,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히말라야의 강렬한 햇살이 고운 주름으로 새겨져 있던 찻집 여인의 모습도 희미해질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긴장감이 다시 상념들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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