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박지원의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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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 박지원의 『열하일기』
  • 신병주
  • 승인 2014.12.0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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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은 무엇일까? 필자는 주저 없이 『열하일기』를 손꼽고 싶다. 『열하일기』는 조선후기의 북학파 학자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1780년(정조 4) 청나라를 다녀온 후에 쓴 기행문으로 1783년에 완성했다. 1780년 44세의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고희연을 맞아 사신단의 일원인 재종형 박명원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사신단의 심부름을 맡은 사람) 자격으로 청나라에 가게 됐다. 이때 건륭제가 피서차 열하산장에 있었기에 열하까지 다녀온 기행을 적으며 제목을 『열하일기』라 한 것이다.

 

| 열하로 가는 길에 남긴 기록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총 여행 기간은 약 5개월이었으며, 박지원이 열하까지 간 여정은 압록강에서 연경까지 2천 3백리, 연경에서 열하까지 700리로 육로 3천리의 긴 여행이었다. 한양→박천→의주→요양→성경(심양)→거류하→소흑산→북진→고령역→산해관→풍윤→옥전→계주→연경(북경)→밀운성→고북구→열하 등이 주요 행선지였다. 평소 청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박지원은 가는 곳마다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열하일기』는 26권 12책으로 구성되었으며,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의 일부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12책으로 구성된 각 책의 소제목은 1책 도강록渡江錄, 2책 성경잡지盛京雜識, 3책 일신수필馹新隨筆, 4책 관내정사關內程史, 5책 막북행정록漠北行征錄,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6책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경개록傾蓋錄, 황교문답黃敎問答, 반선시말班禪始末, 찰십윤포扎什倫布, 7책 망양록忘羊錄, 심세편瀋勢編, 8책 혹정필담鵠汀筆談, 산장잡기山莊雜記, 9책 환희幻戱, 피서록避暑錄, 행재잡록行在雜錄, 희본명목戱本名目, 10책 구외이문口外異聞, 옥갑야화玉匣夜話, 금류소초金蓼小鈔, 11책 황도기략黃圖紀略, 알성퇴술謁聖退述, 앙엽기盎葉記, 12책 동란섭필銅蘭涉筆 등이다.

1책 「도강록」은 압록강에서 요양遼陽에 이르기까지 15일간의 기록이다. 박지원은 책문柵門 안에 들어서자마자 청나라의 성을 쌓는 제도와 벽돌을 사용하는 법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2책 「성경잡지」는 십리하에서 소흑산에 이르기까지 5일 동안의 여정기이며, 3책 「일신수필」은 신광녕에서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주로 병참兵站 지대를 지나가는 9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수레, 시장, 점포에 대한 박지원의 깊은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4책 「관내정사」는 산해관에서 연경까지의 일정으로, 이 부분에는 저자의 대표적인 한문소설인 『호질』이 실려 있다.

5책 「막북행정록」은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기까지 5일 동안의 기록으로, 당시 열하의 정세가 잘 관찰돼있다. 「태학유관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머물었던 6일간의 일들로, 중국의 학자들과 두 나라의 문물제도에 대한 논평을 교환했던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홍대용의 지전설地轉說 등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6책 「환연도중록」은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 교량, 도로, 배의 제도 등 도로와 교통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경개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6일 동안 머무르며 그곳의 학자들과 문답한 내용들이며, 「황교문답」은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한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반선시말」은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판첸라마)에게 취한 정책을 언급한 것으로, 황교와 불교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깊이 있게 밝히고 있다. 「찰십윤포」는 열하에서 본 판첸 라마에 대한 기록이다.

7책 「망양록」은 열하에서 왕민호, 윤가전과 함께 음악에 대해 토론한 내용으로, 토론에 열중하느라 윤가전이 미리 마련해둔 ‘양 한 마리가 온통 식는 것도 잊는다.’는 뜻에서 ‘망양록’이라 이름 했다. 「심세편」은 조선의 오망(五妄, 다섯 가지 망령됨)과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해 논평한 글로 주자학과 중화주의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다.

8책 「혹정필담」은 왕민호(호가 혹정임)와 그 주변 인물들과 펼친 필담을 기술해 놓은 것이며, 「산장잡기」는 열하 산장에서 견문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9책 「환희기」는 중국 특유의 요술쟁이의 여러 신묘한 연기를 구경하고난 느낌이, 「피서록」은 열하의 피서 산장에서 중국의 저명한 학자들과 주고받은 시문을 옮겨 놓은 것이 주요 내용이다. 「행재잡록」은 청 황제의 행재소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희본명목」은 건륭제의 만수절에 행하는 연극놀이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10책 「구외이문」은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적은 것이다. 「옥갑야화」는 옥갑에서 비장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로 역관들에 관한 숨겨진 비화들이 들어있는데, 이 책에는 『허생전』이 수록돼 있기도 하다. 「금류소초」는 중국에서 수집한 의학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한 것으로 『동의보감』에 대한 언급도 있다.

11책 「황도기략」은 황성皇城에서 화도포까지 보고 들은 내용으로 북경 황성의 전각, 점포, 기밀 등을 세밀히 기록해두었으며, 「알성퇴술」은 순천부학順天府學으로부터 조선관朝鮮館에 이르기까지를 열람한 기록들이다. 「앙엽기」는 홍인사弘仁寺로부터 마테오 리치의 무덤에 이르는 20여 개소의 주요명소를 정리해 놓은 것이며, 마지막 12책 「동란섭필」은 동란재銅蘭齋에 머무를 때의 수필로 가악歌樂 등에 대한 잡록이다.

 

|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는 열정

청나라의 문화와 생활 풍속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열하일기』 속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추구한 박지원의 북학北學 사상이다. ‘거제(車制, 수레의 제도)’라는 글에는 이러한 입장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무릇 수레라는 것은 하늘이 낸 물건이로되 땅 위를 다니는 물건이다. 이는 뭍 위를 달리는 배요, 움직이는 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큰 쓰임에 수레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 우리 조선에도 수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궤도에 들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조선은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를 쓰기에 적당하지 못하다고 한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소리가 어디 있는가?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 …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다지도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수레가 나라에 다니지 않는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수레는 왜 못 다니는가? 이것도 한마디로 대답하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이다. 양반들은 평생에 읽는다는 것이 입으로만 외울 뿐이며, 수레를 만드는 법이 어떠하며 수레를 부리는 기술은 어떠한가에 대한 연구가 없으니 이야말로 건성으로 읽는 풍월뿐이요, 학문에야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어허! 한심하고도 기막힌 일이다.”

박지원은 조선이 빈곤한 원인을 수레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서 찾았다. 조선에도 수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궤도에 들지도 못하기 때문에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선에는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를 쓰기에 적당하지 못하다고 한다.’는 변명에 대하여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라 하여 수레를 만들지도 않고 포기하는 자세를 신랄히 비판했다. 그리고 직접 수레를 만들어 활용하면 수레를 이용할 길은 만들어진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것은 현대의 교통망 확보와도 흡사한 점이 있다. 1970년대 경제개발 기간 중 산을 깎고 터널을 뚫어 고속도로망을 확보한 것이 여러 측면에서 경제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수레를 단순한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수레의 활용에서 비롯되는 도로망 건설 등 국가 산업 전반의 발전을 꾀한 것으로, 박지원의 이용후생 사상은 시대를 앞서간 것임을 알 수 있다.

박지원은 이용후생과 부국富國을 강조한 북학파의 중심인물이었다. 북학파의 등장은 기존에 조선의 국시國是로 자리를 잡았던 북벌北伐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흐름이 대두되었음을 보여준다. 현대사와 비교하면 반공만이 살길이라고 교육받았던 1950~1970년대를 건너뛰어, 1990년대 이후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 공산권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는 시대 분위기와도 흡사하다.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현재 내용이 조금씩 다른 『열하일기』 필사본이 9종이나 남아있는 것을 보아도 『열하일기』가 당시에 어느 정도 유행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열하일기』가 이렇게 유행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글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턱이 빠질 정도로 웃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박지원은 조선의 토속적인 속담을 섞었고, 하층 사람들과 주고받은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기록했다. 또 한문 문장에 중국어나 소설체를 사용하는 등 일상적으로 쓰는 판에 박힌 글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쓰면서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가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하일기』에는 당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는 열정이 담겨져 있었다. 『열하일기』를 지금까지 불후의 고전으로 칭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 자문포럼 위원, 남명학 연구원 상임연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사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KBS ‘역사추리’, ‘역사 스페셜’, ‘한국사 傳’ 등의 자문을 맡았으며, ‘역사저널 그날’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조선 평전』, 『이지함 평전』,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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