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을의 부끄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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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을의 부끄러운 고백
  • 원영스님
  • 승인 2014.12.03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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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진다. 바람이 분다.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욕망도 있고 갈등도 있다. 이중성도 있고 윤리성도 있다. 어느 것을 택하여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은 변화한다. 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 불리는 출가를 택하여 여기까지 왔다. 끝이 어딘지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길은 이어져있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주시하는 눈을 갖고 싶다.

 

| 고백 하나,

낯선 사람을 대할 줄 몰랐다

머리 깎은 지 얼마 안 되어 절에서 신도들과 함께 장애우가 모여살고 있는 소쩍새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이상한 스님의 후원금 횡령사건으로 인해 공연히 소쩍새마을 장애우에 대한 후원만 끊어져서 그곳 삶이 더 힘들어졌을 때다. 이럴 때일수록 더 찾아가봐야 한다는 은사스님의 자비심 어린 주장에 모두가 수긍하고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소쩍새마을의 첫인상은 글쎄 뭐랄까? 약간 휑한 느낌도 들고, 불어오는 바람도 비릿하게 느껴지는 게 깔끔하지 못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편견이었다. 나는 경직된 태도로 서먹하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월동준비에 무엇을 도와드려야할지 몰라 일거리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그때였다. 여럿이 모여 있던 무리 속에서 웬 남자가 무작정 돌진하여 달려와 나를 덥석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그 당혹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주위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사람을 떼어내려고 서둘러 밀쳐냈다. 하지만 그 친구 힘이 어찌나 세던지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밀쳐내려고 하면 할수록 내 몸을 더 꼭 죄고 놓지 않았다.

그때 옆쪽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은사스님 말씀이 “가만히 있으면 된다. 네가 좋은가보다. 자비심을 갖고 어른처럼 행동해라.” 하시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나 죽었소’하고 눈을 감았다. 다행히 그곳 선생님들이 그를 달래며 억지로 떼어주셨다. 얼음장처럼 굳어있는 내게 선생님들은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스님이 좋은가 봐요. 여기 친구들은 좋으면 무조건 달려들거든요.” 하는 거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사람 나이가 43살이라는 것. 내 나이가 머리 막 깎은 23살이니 어리기도 어렸지만, 제아무리 출가한 스님이라 해도 무조건 좋다고 달려드는 지체장애자를 감당하기에는 도력道力이 딸렸다.

청소를 도와주고, 음식도 날라주며 하루의 봉사활동이 끝날 때까지 그는 뒤통수가 찌릿할 정도로 나를 따라다녔다. 머릿속에선 빨리 마치고 절로 돌아갈 생각만 가득했다. 일을 마치고 청소를 마무리하자, 나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이번엔 버스에 올라타는 나를 보며 그가 엉엉 우는 게 아닌가. 난감백배였다. 하는 수 없이 버스에서 도로 내렸다. 연민도 자비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아무튼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울지 말아요.” 그랬더니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전마(정말)? 전마 또 와요?”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미 느낌으로 알고 있었으리라. 낯선 사람을 대할 줄 모르는 못난 내 마음을.

 

| 고백 둘,

어느새 이중성에 물들어갔다

이렇게 낯선 세계의 사람들에게조차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고 살던 햇중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다양한 고민들을 접하고 그의 마음에 다가가 조언까지 해주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편견을 물리치는 방법은 직접 많이 접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누구든 균형 있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변화를 갖게 하니까 말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인생의 변화가 꼭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랍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차 남을 훈계하고 가르치려드는 잔소리꾼이 되어갔다. 흔히 말하는 ‘지적질’도 버릇처럼 굳어졌다. 남 앞에서는 정의로운 듯이 보이고자 했고, 헛된 욕망을 품고서도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미소 지었다. 얼굴이 일그러질 만한 일에도 태연한 척 하는 일도 많아졌고, 보시와 공양을 베푸는 이들에게는 더욱 신경을 썼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그런 경험이다. 출가한 우리끼리만 아는 바로 그 이중성, 양면성의 태도 말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사람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데, 물질이나 체면을 위해 나는 우리끼리만 아는 그 이중성을 몸에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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