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듣다] 산은 흐르고 강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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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듣다] 산은 흐르고 강은 서있다
  • 만우 스님
  • 승인 2014.12.0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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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나선다. 길을 떠난다. 닫혀있다는 느낌, 어둡다는 생각이 문을 만들고 길을 낸다. 그리고 문을 열고 길을 나서게 한다. 그러나 문을 나서는 순간 또 다른 문이 나를 가두니 그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기대가 줄지 않는다. 창창하다. 언젠가 문을 나서면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 마음이 완전히 열려, 문이 없는 길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강가의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시원始原을 떠올리게 된다. 이 강물은 어디서 발원發源하여 어디를 거쳐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가?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지리학적 호기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근원, 존재의 본질에 대한 명상으로 무리 없이 이어진다. 은빛 히말라야에서 시작되어 흐르는 강을 보면 이러한 사유의 폭은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안나푸르나는 동쪽으로 마르샹디marsyangdi 강이, 서쪽으로는 칼리간다키kaligandaki 강이 남쪽을 향하여 유려하게 흐른다. 그 흐름을 따라 수많은 삶터와 종교적인 수행터가 자리하고 있고 문을 찾고 길을 묻는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완성도 높은 유적이나 문자에 의해서 알려진 역사는 물론, 추상적인 상상력으로 복원할 수밖에 없는 오래된 인간의 미세한 흔적도 강줄기와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삶터를 연결하는 길의 곡직曲直은 강물의 길과 닮은꼴일 수밖에 없다.

티베트에 있는 강린포체(수미산)를 중심으로 동서로 공히 2,900㎞를 달려 서로는 인더스강이 되어 아라비아해로 잠기고 동으로는 얄룽창포, 부라마푸트라강이 되어 벵갈만으로 스미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 그 사이사이에 또 수많은 지류들이 모여 강과 내를 이루며 역사와 문명을 태동시켰다. 히말라야를 흐르는 모든 강물은 한 점 흰 눈들이 모여 쌓인 만년설이 녹아 형성되니 그 발원은 한 점 흰 눈이고 한 빛 흰 빛이다. 이 흰 한 점이 흐르는 길을 따라 히말라야 주변의 모든 삶터가 열리고 흐르지 않으면 닫힌다. 한 점에서 천지가 열리고 닫힌다. 엄연儼然하다.

 

| 흐르는 것인가 흐르지 않는 것인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소리만 들어도 산은 흐르고 강은 흐르지 않는 어떤 점과 조우하게 된다. 단지 쌓이면 산이고 흐르면 강이다. 한 점 흰 빛으로 한 몸이고 보면 물은 흐르지 않고 산이 흐른다는 관觀이 자연스레 열린다. 문 하나를 통과한다.

히말라야에서 강은 나디nadi로 표기된다. 나디는 인체로 말하면 생명에너지의 통로다.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문명은 인체 가운데 나디의 원점을 가장 밑바닥에 두었다. 원시의 에너지, 즉 꾼달리니가 잠들어 있는 곳, 생명에너지의 저장고인 제1 챠크라(그들은 인체에 일곱 개의 챠크라를 설정했다.)는 두 다리를 통해 받아들인 에너지가 처음 만나는 척추기부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인지했다. 그리고 꾼달리니를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가naga, 즉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 했고 꾼달리니가 각성되는 모습을 뱀이 또아리를 풀고 움직이는 나선형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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